글쓰기의 가치

Essay : 2006.12.31 18:36   By LiFiDeA

온라인 상에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다양한 주제에 대한 나의 생각을 블로그에 올리기로 한 것이다. 이미 몇 편의 글을 작성해서 올린 시점에서, '본격적으로'글을 쓰기에 앞서서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해 글을 쓸 필요성을 느낀다. 글을 써야 하는 이유와, 지켜야 할 원칙을 서술하겠다.

사실 혼자 자유롭게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글을 쓰는 것이 상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글을 그다지 많이 쓰지는 않았다. 글을 쓰기보다는 아웃라인 작성이나 마인드 맵 그리기 등을 주로 해 왔기 때문이다. 주된 이유는 '효율성' 이었던 것 같은데, 같은 생각을 표현할 때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자연스럽게 나중에 이를 다시 떠올려서 수정하는 데에도 더 많이 들어가는 글 보다는 생각을 구체화하고 간단히 정리할 수 있는 다른 형태가 더 좋아 보였던 것 같다.

물론 앞서 열거한 형태의 생각 표현 방식이 갖는 장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제는 글을 쓰자고 결심했다. 다른 방식이 흉내조차 낼 수 없는, 글이 갖는 비효율성을 가볍게 상쇄하는 '효과성' 때문이다. 결국 내가 하려는 것은 나의 생각을 표현하자는 것이고, 생각은 언어의 형식을 빌어 이루어진다. 그리고 글은 특정 주제에 관한 생각을 문장과 단락이라는 단위로 조직하고, 이러한 단위 간의 유기적인 연결을 통해 표현하는 방법이다. 문장과 문장 사이, 단락과 단락 사이의 관계 하나하나에도 저자의 생각이 반영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글은 사고 과정의 활자화라고 할 수도 있겠다. 반면에 아웃라인 작성이나 마인드 매핑은 모든 구성 요소간의 유기적인 관계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단지 특정 주제에 대한 생각을 모아 최소한의 질서를 부여한 결과물이다.

비유하자면 이들은 '구슬(생각)을 만드는' 작업이며, 글을 쓰는 것은 '구슬을 꿰는(조직화)'작업일 것이다. 특정 주제에 대해서 발상을 이끌어내는 작업, 이를 조직화하는 작업이 각각 중요한 일이지만 여기에서 글을 주목하는 것은 이러한 조직화 작용이 갖는 효력 때문이다.

필자는 특정 주제에 대해서 아웃라인을 작성하고 글을 쓰기 시작할 때에 이러한 효과를 극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우선 첫번째 느낀 점은 논리성이나 참신성 면에서 검증되지 않는 생각에 대해 아웃라인을 작성할 수는 있어도 글을 작성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생각의 단편들인 아웃라인이 집필이라는 과정을 거쳐 글이라는 유기적인 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단편 간의 논리적인 연결 고리가 존재해야 하며, 집필이라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표현 가치'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생각을 검증하기 위해서는 글을 써 보면 된다는 것이고, 이러한 검증 작업을 통한 결과물인 글은 그만큼의 가치를 보증할 수 있을 것이다. '남에게 설명할 수 있다면 제대로 아는 것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활자화된 설명인 글은 그 주제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보증하는 것이다.

두 번째 효과는 글이라는 조직화 과정에서 경험할 수 있는 생각의 완성이다. 종종, 아웃라인 단계에서 전혀 생각할 수 없었던 아이디어가 막상 글을 쓰는 단계에서 불쑥불쑥 튀어 나오는 경험을 한다. 아웃라인을 '뼈대 세우기'에, 글을 '살 붙이기'에 비유할 때 이러한 아이디어는 '살'에 해당하는 지엽적인 성격을 띠는 경우가 많지만, 집필 과정에서 종종 '뼈대'가 나오기도 한다. 생각의 조직화 과정에서 빠진 부분이 드러나고, 이를 채우지 않으면 글이라는 유기체를 완성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서 도출할 수 있는 글의 가치는 생각을 검증하고 조직화할 수 있는 수단이라는 점이다. 의식의 흐름에서 간헐적으로 튀어나오는 영감이 쓰기라는 작용을 거쳐 글이라는 완성품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조직화 작용은 생각을 공유하는 수단으로서 글이 갖는 경쟁력을 뒷받침한다. 일단 글의 형태로 조직된 생각은 최소한의 완성도를 보증하는 것이다. 반대로,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 생각이라면 일단 글의 형태로 작성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예전에는 두껴운 책을 다 읽기 싫어 '핵심 요약본' 같은 것이 없나 두리번거렸던 것 같다. 물론 그런 접근이 바람직한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제대로 된 글'이 줄 수 있는 효과를 대체할 수 있는 표현 수단은 없는 것 같다. 특히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 아닌 감동과 깨달음을 불러일으키는 수단으로서의 글은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다. 진부한 생각이라도 어떻게 표현되느냐에 따라 놀라운 효과를 불러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인류의 지적 문화 유산이 그 전달 수단으로 글을 채택하고 있는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글의 가치를 모든 글에서,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별 고민 없이 글을 쓴다면 생각을 메모한다거나, 표현 욕구의 해소에는 도움이 될 지 몰라도 스스로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읽히는 글'이 되기는 힘들 것이다. 모든 분야에 걸쳐 훨씬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에 정리되지 않은 글을 읽을 만큼 한가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별 생각 없이 글을 쓰는 것은 차라리 죄악이다.

이러한 글이 갖는 가치만큼이나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고위 공직자나 전문직 자격 시험에 가장 중요한 관문으로 '글 쓰기'가 포함된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글 쓰기에 부여하는 가치를 알 수 있다. 신언서판이라는 성어에서 처럼 예전부터 사람의 지성을 판단하는 데에는 '그 사람의 글'이 큰 역할을 했었던 것 같다. 여기에는 특정 주제에 대한 생각을 논리적으로,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과정에서 지적 능력의 총체가 발휘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러한 좋은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인간의 다른 모든 활동과 마찬가지로 글 쓰기 능력 역시 훌륭한 작품을 많이 보고, 어떤 점에서 그러한 글들이 다른 글과 차별화되는지에 대해 느낀 후에, 이러한 점을 자신의 글에서 재현해보려는 노력에서 향상되는 것 같다.

종종 특정 분야의 '대가'의 글을 읽으면 문단의 구성, 수사 기교, 심지어는 단어의 선택에 까지도 수십년간 쌓인 내공이 스며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꾸준히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다 보면 먼 미래에 내가 쓴 글에서 위대함을 발견하는 사람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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