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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2.28 위대한 인물의 조건 -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서 배운다 4
이 블로그를 꾸준히 읽으신 분이라면 제가 시오노나나미의 팬이라는 점을 아실 겁니다. 시오노나나미는 보통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의 저자로 알려져 있지만, 저는 '남자들에게'라는 책을 읽고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수십년간 고대사에 대한 저작을 전문으로 했던 경험에서 우러나온 인간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이 일품이었습니다.

그 후 그녀의 책을 몇권 더 읽었지만, 최근에야 '로마인이야기 - 율리우스 카이사르 편'을 읽게 되었습니다. 카이사르는 로마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 가운데서도 시오노나나미가 '남자중의 남자'로 생각하는 인물입니다. 책을 읽으며, '남자들에게'를 통해 보여준 남성론의 사실상 모델이라고 할만한 카이사르라는 인물에 대해 다시금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은 책에 등장하는 카이사르의 위대함에 대해 써 보려고 합니다.

유연한 판단력

'남자들에게'를 보면 카이사르에 대해 '수재 타입은 아니지만 판단력이 뛰어난 남자'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이처럼 시오노나나미는 '머리가 좋은 사람'과 '판단력이 뛰어난 사람'을 구별하는데, 카이사르는 후자의 대표격입니다. 다음 사례는 관습이나 상황 요인에 얽매이지 않고 독창적인 판단을 내리는카이사르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카이사르는 갈리아 전쟁에서 딱 한번의 후퇴를 경험하게 되는데, 그 때 그는 칼을 잃어버렸다. 갈리아인들은 그 칼을 전리품으로  거두어 자기네 신전에 모셔두었다. 이듬해에 다시 승리한 카이사르가  그것을 보았을 때, 측근들은 치욕의 증거물이니까 치워버리자고 했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이미 신앙이 대상이 되었으니까 그대로 두라고 했다.
웬만한 지휘관같으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을 일입니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비록 정복당한 민족이지만 로마에 진정으로 동화되기 위해서는 고유의 문화를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을 이해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유연한 판단력은 전장에서 적군의 허를 찌르는 데도, 그 유명한 '루비콘의 강'을 건너는 데에도 발휘됩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

카이사르가 그 능력을 발휘했던 정치도 군사도 결국 사람을 다루는 일입니다. 시오노나나미가 묘사하는 카이사르의 일거수일투족에는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 담겨 있습니다. 
나무라기만 하면 병사들의 사기를 꺾는 결과로 끝나기 쉽다. 그래서 카이사르는, 설령 무모함으로 끝났다 해도 너희들의 용기는 가상하다고 치하한 다음,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나 너희들이 전황의 진전이나 전투 결과를 총사령관보다 더 정확히 꿰뚫어볼 수 있다고 여긴 오만함은 용서할 수 없다고, 그리고는 이런 말로 질책을 끝냈다.  "나는 너희들에게 용기와 긍지 높은  정신을 바라지만, 그 못지않게 겸허함과  규율 바른 행동을 바란다."

옛 애인을 만났다고 하자, 같은  계층에 속해 있으니까 우연히 만날 확률도 높았을 것이다. 그런 경우 평범한 남자라면 난처하게 여긴 나머지 본의 아니게 모르는 척하고 지나칠 것이다.  그런데 카이사르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아내한테는 잠깐 가디리라고 말해놓고, 참석자들이  모두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당당히 옛 애인에게 다가가서, 그녀의 손을 상냥하게 잡으면서 묻는다.  "어떻게 지내시오? 별고 없으시죠?"  여자는 무시당했을 때 가장 깊은 상처를 입는 법이다.
이처럼 실패한 부하 병사에게나, 옛 애인에게나 카이사르는 자신이 관계를 맺는 상대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았습니다.

귀족정신

귀족이라는 말이 물질적 풍요와 동의어처럼 되어버린 요즘이지만, 본래의 의미는 자신의 지위나 품격에 걸맞는 행동양식(Noblesse oblige)을 가리킵니다. 카이사르는 욕심을 채우기보다는 신념에 충실한 삶을 지향했고, 스스로의 품격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진정한 귀족정신의 소유자'였습니다.
카이사르는 평생 동안 자신의 신념에  충실하게 사는 것을 지향한 사나이기도 하다. 그의 신념은 국가체제의 개조이고, 로마 세계에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는 것이었다. 루비콘 강을 건너지 않으면, 즉 '원로원 최종 권고'에 굴복하여 군단을 내놓으면 내전을 피할 수 있겠지만, 새로운 질서 수립은 꿈으로 끝나게 된다. 그래서는 지금까지 50년을 살아온  보람이 없다. 보람없는 인생을 살았다고 인정하는 것은 그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분노나 복수는 상대를 자신과 대등하게 여기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이고 일어날 수 있는 행위다. 카이사르가 평생 이것과 무관했던 것은 분노나 복수가 윤리 도덕에 어긋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우월성에 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월한 자신이 왜 열등한 타인의 수준으로  그들과 똑같이 분노에 사로잡히거나 그들과 똑같이 복수심을 불태워야  하는가. 
다른 사람보다 스스로 우월하다는 인식이 자칫 '자만심'이 될 수도 있지만, 위 글에서처럼 스스로의 행동에 높은 기준을 세우고 지키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마치며

위에서 언급한 위대함의 조건의 공통점은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로마인 이야기'에 드러난 카이사르는 많이 배우거나 재력을 갖춘 인물은 아니지만, 이처럼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공을 일구어냅니다. 그는 또한 조숙한 천재라기보다는 젊은 시절 경험한 많은 방황과 실패를 토대로 비교적 늦은 나이에 업적을 이루어낸 대기만성형에 가깝습니다.  

예전에 '빌게이츠가 우리나라에 태어난다면...'식의 유머가 유행했던 기억이 납니다. 카이사르가 현재의 우리나라에 태어난다면 과연 어떤 업적을 이룰 수 있었을까요? 스팩 경쟁 열품 등에 휩싸여 자격증이나 영어 공부 등에 젊은 날을 대부분 보내지 않았을까요. 또한, 창업자들의 실패를 자산으로 여기는 실리콘벨리와는 달리 우리나라는 아직 창업이든 취직이든 실패한 사람이 다시 일어서기가 쉽지 않습니다. 

환경의 불리함을 딛고 일어서는 것이 성공하는 사람의 조건이긴 하지만, 다양한 성공의 사례를 가르치고 젊은이들의 실패에 좀더 관대할 수 있다면 카이사르와 같은 인물이 좀 더 많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