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디서나 iPad이야기입니다. 주로 개발(hacking)용으로 컴퓨터를 쓰는 저는 결국 베일을 벗은 Apple Tablet이 범용 컴퓨터가 아니라는 사실에 실망했지만, 갈수록 인터넷으로 접할 수 있는 미디어는 많아지고 그동안 노트북으로 장시간 웹페이지나 영화를 보는 데 한계를 느꼈던 점을 생각하면 분명 매력적인 기계입니다. 그리고 IT업계 종사자가 아닌 다음에야 터미널(console)을 띄울 수 없다는 사실을 얼마나 불편해 하겠습니까 ;)

오늘은 iP* 시리즈에서 나타나는 애플의 계속된 '플렛폼화' 전략이 업계, 특히 한국의 IT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가 컴퓨터로 대학원에 진학한 제가 귀에 닳도록 들은 말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소프트웨어를 해서는 밥 먹고 살기 힘들다.
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주변 분들이 '삼성전자에는 컴퓨터 전공 임원이 하나도 없다', '프로그래머는 정년이 40이다'는 말씀을 하실 때에는 잠시 흔들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해야 잘 하는 성향 탓에 별 고민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때가 2006년의 일입니다.

하지만, 2010년 한국 언론의 IT관련 섹션은 재주는 한국, 실속은 외국… 스마트폰도 뒤처져 ‘위기’애플 ‘아이패드’ 공개…콘텐츠 유통 혁명 “뭐하니, IT 코리아”와 같은 기사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이제 이런 발언을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소프트웨어를 무시해서는 삼성전자도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애플이 파는 휴대폰은 단 한종류이고, 판매 댓수도 노키아의 1/10이 안 되지만 순익은 더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수익의 상당 부분이 앱스토어의 애플리케이션 판매에서 온다는 것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것이 소프트웨어의 힘입니다. 남들이 휴대폰을 하드웨어와 네트웍 비즈니스로 볼 때, 이를 애플리케이션을 올리고 판매할 수 있는 플렛폼으로 볼 수 있었던 혜안,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운영체제와 개발 환경을 포함한 풀 스택(full stack)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기술력이 오늘의 iPhone을 만들었습니다.

사실 iPhone에서 나타난 애플의 성공 비결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애플이 처음 iPod을 내놓았을때에도 초기 반응은 신통치 않았지만, iTunes 및 뮤직 스토어와 결합된 차원높은 사용 환경(user experience)은 결국 iPod이 세계를 제패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iPhone에 이어 iPad에서 플렛폼화 전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iPad에 대한 반응이 엇갈리고 있지만, 그동안 iPhone 앱을 개발하던 인력들이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내놓기 시작하면 점차 시장을 석권하게 될 것입니다. 

그동안 전자 및 반도체 산업에서 우리나라가 이룩한 성장은 눈부시지만, 기술의 상향 평준화에 따라 하드웨어에서 창출할 수 있는 부가가치는 한계를 드러내고, 하드웨어 판매를 위해서라도 소프트웨어를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갑니다. 게다가 소프트웨어의 판매에는 국경도 없고, 고정 비용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황금 산업입니다. 하지만 플렛폼화는 커녕 휴대폰마다 운영체제를 따로 만들고 있는 우리나라 업체들에게 이것은 먼나라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해야 할까요.  '플렛폼 전략'이라고 간단히 이야기했지만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범용 운영체제-컴파일러-개발 툴을 제공하고, 개발자들이 이를 활용하여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고, 이런 노력이 다시 제품의 가치를 높이고 판매 및 개발을 더욱 활성화하는 선순환의 고리가 완성되어야 합니다.  소프트웨어 기술 뿐만 아니라, 개발자 지원 등의 플렛폼 운영 노하우, 그리고 사회적인 인프라까지 필요한 일입니다. 우리의 대표격인 삼성전자가 뒤늦게나마 '바다'를 만든다고 나섰지만, 한두 업체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일은 아닙니다. 

풀뿌리 축구가 결국 그 나라 대표팀의 성적을 좌우하듯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취미로 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직업 프로그래머의 대우도 개선하여 최고의 인력들이 몰리도록 해야 합니다. 플렛폼 전략으로 세계를 이끌고 있는 구글과 애플이 모두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우대받는 미국, 그것도 실리콘 벨리의 회사라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겁니다. 최근 화두가 된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에 대한 각성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기를 기원해 봅니다.


P.S. 그나저나, iPad은 과연 성공할까요? 여러분의 의견은 어떠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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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애플제품을 한번도 사용해본적이 없지만, 그간, 애플이 사회,산업전반에 기친 영향력을 본다면, 아이패드의 성공은... 이미 깨끗히 만들어놓은 고속도로를 달리는거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씁쓸합니다..

  2. 좋은 비유시네요. 우리 나라의 교육 수준과 국민성을 생각해보면 소프트웨어 산업도 승산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3. 정말로 공감하는게 삼성에서 아무리 똑똑한 애들 뽑아다가 어플을 만든다고 해도...아이튠즈 앱스토어 생태계를 만들어 주고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이익(돈이든 유명세든)을 위해 어플을 올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걸 걸러내는' 진화해 나가는 환경을 이길 수 없을 것 같어.

  4. 하루 아침에는 안 되겠죠... 하지만, 우리 나라가 어떻게 전자산업을 일으겼는지를 생각해보면, 현재 상황은 잠재력 문제라기보다는 노력 부족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문화는 갈길을 정하면 추진력있게 움직이지 않습니까. 예컨데 이건희 회장이 '앞으로 소프트웨어가 삼성을(우리나라를) 먹여살린다'고 일갈해 주신다면 도움이 될텐데요 ;)

  5. 미래를 내다보는 글 잘 읽고 갑니다. 글쓰기는 인생을 성숙시키는 도구, 꾸준히 정진 하시길.

  6. 레오빌 2010.02.09 01:43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소프트웨어의 문제는 궁극적으로는 언어와 연결되지 않을까요? 제 말은 영어로 기반이 된 프로그램을 얘기합니다.

  7. 언어 장벽은 지금도 별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제대로 만든 대부분의 소프트웨어(웹사이트)는 로케일 설정으로 각 나라에 맞게 바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죠. 심지어 웹페이지까지 실시간으로 번역해서 보여주는 세상입니다.

    물론 반대로 우리나라 소프트웨어의 경우는 그런 기능이 지원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세계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지만요. 수입은 쉬운데 기술적 한계로 말미암아 수출은 어려운 상황입니다.

  8. 소프트웨어의 힘이 막강함을 apple이 보여주고 있음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요^^
    다른 벤더들이 힘쓰고 있는 마켓들도 분발하여 국내 통신사들이 제대로 정신 차리길 바랍니다.
    삼성의 왕의 귀환이.. (최소한) 이런 상황을 파악해서 선구자를 모신 것이길 바랍니다.

    삼성은.. 참.. http://www.kbench.com/digital/?no=81954&sc=1

  9. 아이고 블로그 글이 재미있어서 읽다 보니.. ^^

    글 전반에 대해서는 전부 동의하구요, 근데 제가 알고 있는 내용과 살짝 다른 내용이
    있어서리.. Apple의 수익원의 대부분이 AppStore에서 나는 건 아닐겁니다. Mp3 다운로드를
    제외하고 순수한 AppStore의 매출은 한국돈 기준 2천억 규모로 들었습니다. 물론 이게 거의
    순익으로 잡히겠지만, 2009 4분기에 33억불을 순익으로 기록한거에 비하면...

    정확한 자료를 못찾아드려서 죄송한데 ^^;;; 암튼 잘못 알고있기 쉬운 내용이라고 하네요.

  10. 양광웅 2010.03.29 03:59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글 잘 읽었습니다. ^^

    어느 기사에서 읽었는데, 스티브 잡스가 직접 "앱스토어로 운영비도 건지기 어렵다."고 예기했다고 합니다.
    본문에서 "플랫폼"이란 단어를 언급하셨는데, 무었을 플랫폼으로 보는지 정의를 해 주셨으면 합니다. 플랫폼이란 단어가 워낙 광범위하게 쓰여서요...

    • 몇년도 기사를 말씀하시는건지 궁금한데요, 요즘은 앱스토어가 애플의 컨텐츠 매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걸로 알고 있거든요.

      위 글에서 '플렛폼'이란 개발자들이 그 위에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유통할 수 있는 개발환경(iPhone SDK) 및 유통망(AppStore)를 통칭하는 의미로 사용하였습니다.

  11. 양광웅 2010.03.29 17:13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앱스토어 관련해서는 아래 기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news.donga.com/Economy/New/3/01/20100205/25972702/1&top=1

    본문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애플의 최고경영자(CEO)인 스티브 잡스 역시 앱스토어의 수익만으로는 운영비용조차 감당하지 못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

    감사합니다.

  12. 삼성전자에 컴퓨터 전공 임원 여럿 있고요... 삼성전자는 업종 자체가 전기/전자업체기에 CS 가 아닌 EE 출신이 대세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SW 인력이 점점 우대받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

    • 예, 대내외적인 상황으로 우리나라 회사들이 변화에 대한 많은 압력을 받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 HP 같은 회사들도 소프트웨어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상황이니 우리나라만의 상황은 아니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