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불통이 가져다준 마음의 평화

Essay : 2010. 12. 27. 07:08   By LiFiDeA
며칠 전 갑자기 집에서 사용하는 인터넷이 먹통이 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저희 집은 옆집의 컴캐스트 인터넷 계정을 무선으로 공유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옆집에서 해결해주기를 기다리는 것 이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얼마전 @estima7님꼐서도 비슷한 내용을 트윗하신걸 보았지만, 갑자기 인터넷이 되지 않으니 답답한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메일, 구글 리더, 트위터, 스카이프 등등의 커뮤니케이션은 물론이요, iPad와의 싱크를 위해 사용하는 DropBox, Google Docs 등의 모든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가 동작하지 않으니 일을 제대로 할수도 없었습니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한참을 기다려도 상황은 해결되지 않았기에, 조금 여유를 가지고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몇시간을 보내고 나자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인터넷이 없는 집에서의 시간이 너무나 평화롭게 느껴진 것입니다.

메일이나 블로그를 읽을 수도 없고 웹서핑을 할수도 없으니, 가능한 활동 범위가 훨씬 제한되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선택의 제한이 오히려 평소에 중요하지만 긴급하지 않아 미루어 두었던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것입니다. 그 몇 시간동안에 언젠가 읽어야겠다고 출력했다가 한쪽에 밀쳐둔 논문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는 책 한권을 들고 (Society of Mind) 읽으며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일 이외의 무언가에 차분히 열중할 수 있는 경험은 참으로 오랜만이었습니다. 

지난 글에도 썼지만, 소셜 네트워크로 대표되는 인터넷의 무한한 가능성은 그 만큼의 (선택에 대한) 불안과 혼란을 초래합니다. 항상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하고, 전 세계의 정보를 원클릭으로 검색할 수 있는 구글의 시대에 컴퓨터 (및 기타 internet-enabled device) 앞에서 온전히 집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예전에 Is Google Making Us Stupid?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검색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검색 기술 발전이 가져올 수 있는 잠재적인 폐해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무었일까요? 그러한 distraction을 잠시나마 차단하는 것이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저희 집에서 일어난 '인터넷 사건'은 인터넷이라는 가능성의 세계를 차단했을 때, 오히려 남아있는 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해 주었습니다. 예전에 폴 그레이엄이 집에 인터넷을 하는 방을 따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썼던 것을 생각해보면, 저 혼자만의 생각은 아닌가 봅니다. "자유를 제한받은 곳에서 참된 자유가 발휘된다. 정신활동의 완전 연소는 어느 정도의 구속 없이는 성취하기 어려운 것 같다."는 시오노 나나미의 말도 다시금 떠오릅니다.

며칠만에 인터넷은 복구되었고, 다시 시작된 distraction속에 저는 며칠간 경험했던 평화로움을 다시 그리워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집에서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중입니다. 많은 인터넷 서비스에서 (이메일 / RSS / Calendar) 오프라인 사용을 가능하게 하는 애플리케이션을 제공하기에 인터넷이 되지 않아도 큰 불편함은 없으리라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