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Essay : 2010. 3. 6. 12:15   By LiFiDeA
그야말로 all-out effort를 쏟아넣은 한주를 보낸 금요일 밤, 갑자기 든 생각입니다. 성실한 민족성으로 유명한 우리나라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자세는 굉장한 미덕처럼 되어 있지만, 과연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항상 바람직한 일일까요?

1. 냉정함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을 그 일과 동화(identify)시킨다는 일입니다. 그러다 보면 냉정함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많은 일은 열정 만큼이나 냉정함을 필요로 합니다. 따라서, 최선을 다하려다가 오히려 일을 그르치는 수가 있습니다. 

2. 큰 그림을 놓치게 된다.

몰입도가 높을수록 한발짝 떨어져서 전체를 조망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다보면 일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많고, 그 사실을 깨닫기도 어려워집니다. 몇시간 열심히 코딩한 것을 설계상의 실수로 다 날리게 되었을 때의 느낌, 아시나요?

3. 초반에 지쳐 쓰러지게 된다.

가치있는 일일수록 시간이 걸리고 불확실성이 큽니다. 살다보면 100만큼의 노력으로 된다고 생각했던 일에 두세배의 노력이 드는 경우도많습니다. 처음부터 최선을 다하다보면 계속 그만큼의 에너지를 쏟을수도 없을 것이고, 중반쯤 되서 포기하고 싶어집니다. 그러다보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겠죠.

4. 삶의 균형을 잃기 쉽다.

갈수록 개인이 담당해야 할 Role이 많아지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일에 몰입하다보면 다른 일에 정신을 쏟기는 그만큼 어려워집니다. 최선을 다한 일이 잘못된 경우, 그만큼 상처도 큽니다. 한가지만 잘못되어도 모두 망가지는 것이 삶이니, 이 역시 최선을 다하는 데에 따른 부작용이 아닐까 합니다. 

5. 스스로에게 뭔가를 강요하게 된다.

별로 끌리지 않는 일인데도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에 열심히 할 때가 있습니다. 영어에서는 그런 종류의 성실함을 drive라고 칭하고 마음에서 우러난 열정을 passion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강요된 성실함은 오래 가지도 않을 뿐더러 열정의 싹을 잘라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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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적어놓고 나니 말끝마다 'cool'을 입에 달고사는 미국 사람들이 갑자기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열정이 배제된 삶은 마치 흑백 영상처럼 무미건조하겠지만, 열정이라는 불꽃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큰 상처를 입게 될 테니까요. 매사에 최선을 다하기도 쉬운 일이 아닌데, 그렇게 해도 이렇게 함정이 많으니 노래 가사처럼 삶은 참 만만치 않군요. 하지만, 적어도 로봇이 이런 복잡미묘한 판단을 내린다는 것은 당분간 불가능할테니, 아직 인간의 존재 자체를 위협받을 일은 없다는 사실에 안도해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