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는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적은 문구입니다. 평생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순수한 예술혼을 불태웠던 그가 텅 빈 캔버스를 응시하며 중얼거리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요즘 들어 스스로 자주 되뇌이는 말이기도 합니다.

처음 유학을 결심했을 때, 항상 자기 분야의 최전방(state-of-the-art)에서 변화를 접하고 이에 나아가 미래를 열어가는 일에 한몫 거들 수 있다는 점이 연구자의 길을 선택하는 가장 큰 동기였습니다. 매일 새벽별을 보며 돌아오는 생활을 하더라도,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는 여정이라면 차라리 아름다울 것이라는 낭만에 젖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학 생활을 시작한 지 1년 반이 지나고, 새로운 일과 생활에 대한 환상에서도 벗어난 요즘, 연구자라는 진로, 그리고 항상 무언가를 만들어는 직업에 종사한다는 것에 대해 종종 생각하게 됩니다.

우선 밝은 면을 생각해봅시다. 어린시절 찰흙이나 레고 블럭으로 무언가를 만들면서 시간가는 줄 몰랐던 것을 생각해보면 창조는 본질적으로 즐거운 일이 아닌가 합니다. 생산성 및 창의성에 대한 고찰이 돋보이는 책 Flow – the psychology of optimal experience에도 정상급의 학자나 예술가들은 창의적인 작업 도중 종종 무아지경에 빠진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문제는 어떤 일이든 그것이 생계의 수단이 되는 순간 여러가지 제약조건을 안게 된다는 점입니다. 우선 마음의 이끌림에 의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일반 대중)의 필요에 부합하는 대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습니다. 연구자라면 펀딩을 제공하는 주체나 논문을 심사하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슷한 문제로 연구 프로젝트의 규모가 커질수록 각 구성원이 역할이 줄어들며, 이에 비례하여 개인의 주인의식이 희박해진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이보다 심각한 문제는 아마도 직업으로서 지속적으로 생산물을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일 것입니다. 대학원생은 졸업을 위해, 회사 연구원 및 신임 교수는 직업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뭔가 만들어 써내고 발표해야 하기 떄문입니다. 가끔 언론에 성과에 대한 압박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연구원의 사례가 보고되며, 연구 성과 조작등의 비윤리적 사건의 배경에 이런 스트레스가 존재한다는 것을 상기해 봅시다.

하지만 이러한 부담감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창작이 더이상 ’놀이’가 아니고 ’의무’가 되는 순간 무언가 만들어내기 위해 필수적인 정신적 자유를 찾기 어려워진다는 점입니다. 일단 마음이 구속을 받게되면, 생산성은 떨어지게 마련이며 이 점이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오는 악순환이 시작됩니다.

따라서 창작을 업으로 하는 사람에게는 일 자체에서 보상을 찾으며 성과에는 초연한 태도가 필요할 겁니다. 현직에서 왕성한 연구 활동을 벌이는 학자들이 대부분 검소한 생활을 하며, 자신의 분야 이외에는 무관심한 것도 그런 이유인지 모르겠습니다. 거꾸로 연구 활동에서 오는 정신적 보상이 다른 일에 굳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을 정도로 충분하다고 해석해도 될겁니다.

여기 와서 힘에 부칠때마다 예전에 소프트웨어 회사에 근무하며 주어진 스펙을 코드로 옮기는 것보다 좀더 창의적인 일을 꿈꾸던 자신을 떠올립니다. 그 꿈에 한발 다가선 지금, 창작에 대한 부담을 논하는 것은 사치라는 생각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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