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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2.27 인터넷 불통이 가져다준 마음의 평화 2
  2. 2010.02.23 한국 인터넷은 술자리다 4

인터넷 불통이 가져다준 마음의 평화

Essay : 2010. 12. 27. 07:08   By LiFiDeA
며칠 전 갑자기 집에서 사용하는 인터넷이 먹통이 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저희 집은 옆집의 컴캐스트 인터넷 계정을 무선으로 공유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옆집에서 해결해주기를 기다리는 것 이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얼마전 @estima7님꼐서도 비슷한 내용을 트윗하신걸 보았지만, 갑자기 인터넷이 되지 않으니 답답한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메일, 구글 리더, 트위터, 스카이프 등등의 커뮤니케이션은 물론이요, iPad와의 싱크를 위해 사용하는 DropBox, Google Docs 등의 모든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가 동작하지 않으니 일을 제대로 할수도 없었습니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한참을 기다려도 상황은 해결되지 않았기에, 조금 여유를 가지고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몇시간을 보내고 나자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인터넷이 없는 집에서의 시간이 너무나 평화롭게 느껴진 것입니다.

메일이나 블로그를 읽을 수도 없고 웹서핑을 할수도 없으니, 가능한 활동 범위가 훨씬 제한되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선택의 제한이 오히려 평소에 중요하지만 긴급하지 않아 미루어 두었던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것입니다. 그 몇 시간동안에 언젠가 읽어야겠다고 출력했다가 한쪽에 밀쳐둔 논문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는 책 한권을 들고 (Society of Mind) 읽으며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일 이외의 무언가에 차분히 열중할 수 있는 경험은 참으로 오랜만이었습니다. 

지난 글에도 썼지만, 소셜 네트워크로 대표되는 인터넷의 무한한 가능성은 그 만큼의 (선택에 대한) 불안과 혼란을 초래합니다. 항상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하고, 전 세계의 정보를 원클릭으로 검색할 수 있는 구글의 시대에 컴퓨터 (및 기타 internet-enabled device) 앞에서 온전히 집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예전에 Is Google Making Us Stupid?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검색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검색 기술 발전이 가져올 수 있는 잠재적인 폐해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무었일까요? 그러한 distraction을 잠시나마 차단하는 것이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저희 집에서 일어난 '인터넷 사건'은 인터넷이라는 가능성의 세계를 차단했을 때, 오히려 남아있는 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해 주었습니다. 예전에 폴 그레이엄이 집에 인터넷을 하는 방을 따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썼던 것을 생각해보면, 저 혼자만의 생각은 아닌가 봅니다. "자유를 제한받은 곳에서 참된 자유가 발휘된다. 정신활동의 완전 연소는 어느 정도의 구속 없이는 성취하기 어려운 것 같다."는 시오노 나나미의 말도 다시금 떠오릅니다.

며칠만에 인터넷은 복구되었고, 다시 시작된 distraction속에 저는 며칠간 경험했던 평화로움을 다시 그리워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집에서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중입니다. 많은 인터넷 서비스에서 (이메일 / RSS / Calendar) 오프라인 사용을 가능하게 하는 애플리케이션을 제공하기에 인터넷이 되지 않아도 큰 불편함은 없으리라는 생각입니다. 

한국 인터넷은 술자리다

검색산업동향 : 2010. 2. 23. 13:07   By LiFiDeA
주로 연구 목적으로 인터넷을 사용하다가 최근 블로깅을 재개하면서 우리나라 인터넷을 많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단지 제가 익숙하던 인터넷과 많이 다르다는 느낌이었지만, 점차 그 차이가 명확하게 다가왔습니다. 지나친 일반화의 오류를 감수하더라도 이렇게 요약해 보렵니다. 
(미국의) Internet이 광장이라면 우리나라의 인터넷은 술자리입니다. 
광장은 열린 공간에서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서로를 바라보며 의사를 교환하는 상황을 가리킵니다. 술자리는 특정 호스트에 의해 제공되는 닫힌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제한된 참가자들간의 소통을 상징합니다. 물론 광장에서 나누는 대화의 내용은 술자리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똑같은 TCP/IP망에 HTTP프로토콜을 사용하는 인터넷의 특성이 이렇게 다른 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근본적으로 문화가 다릅니다. 미국은 개인 중심의 사회이며, 모임의 장소도 주로 집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도 개인에 대한 집단의 영향략이 강한 곳입니다. 게다가 (저를 포함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임'을 참 좋아합니다. '자기'가 중심이 되는 블로그보다는 싸이월드, 포탈 게시판이 좀더 성향에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인터넷의 특성을 규정하는 데에는 포탈의 역할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아래 표에 간단히 정리한대로 포탈은 인터넷의 주도권을 쥐고 (우리나라에서 인터넷을 한다는 것은 네이버나 다음을 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개인이 생산한 컨텐츠를 편집하고 출판합니다. 그 과정에서 운영방침에 맞지 않는 컨텐츠가 걸러지기도 하고 랭킹도 결정됩니다. 개인이 블로그나 포럼 등에 올린 컨텐츠가 랭킹 알고리즘에 의해 서열화되는 미국과는 매우 다른 모델입니다.

  인터넷 Internet 
주도권 네이버 / 다음 / 기타 분야별 포탈 (e.g. 해커스) 구글 /  블로그
컨텐츠 생산 개인이 생산 개인이 생산
컨텐츠 유통 포탈이 편집 & 출판  개인이 편집 & 출판 
컨텐츠 성격 수다 / 인신공격이 주 정보 교환 / 토론이 주
요약 닫힌 플렛폼 (Splinternet)  / 편집자 중심 열린 플렛폼 / 알고리즘 중심 

재미있는 것은 이런 컨텐츠 유통 과정의 차이가 컨텐츠의 성격에 미치는 영향입니다. 여러번 사회문제가 되었을 정도로 우리나라 인터넷(주로 포탈)에서 생산/소비되는 컨텐츠의 질에는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건설적인 토론보다는 수다와 인신공격이 주를 이룹니다. 반면, Internet의 컨텐츠는 정보 및 의견 교환이 주를 이룹니다. 술자리와 광장이라는 비유가 여기서도 유효합니다. 반면, 우리나라 인터넷에서도 (주로 포탈 밖) 블로그의 컨텐츠는 품질면에서 외국에 견줄만 합니다. 

마셜 멕루한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미디어가 메시지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합니다. 다음 아고라등의 포탈에서는 제한된 카테고리(교육 / 정치 / 문화 / 등등)에 나이 / 계층 구별도 없이 전 국민이 여과되지 않은 의견을 쏟아내고, 이는 다시 답글이라는 형태로 확대재생산됩니다. 많은 서비스에 '인기글' 시스템이 있지만, 이 역시 다양한 글을 골고루 노출시키는 알고리즘의 부재로 일단 인기글에 올라간 글은 품질에 관계없이 계속 남아있는 폐해가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포탈 게시판은 대부분 잡답 수준의 컨텐츠로 채워지고 있으며, 좋은 글이 있어도 발견되기 어려운 탓에 정보원으로서의 가치가 낮습니다.

포탈 측에서는 '적어도 사용자들이 모여 소통할 공간'을 제공하지 않았느냐고 항변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미 사회의 주도적인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된 인터넷을 장악하고 있는 주체로서, 건전한 논의를 유도해야할 사회적 책임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외부 검색엔진에 대한 컨텐츠 비공개 / 임의적인 서비스 중단 및 변경 / 공익보다는 자사의 이익을 위한 편집권 남용 등으로 포탈은 많은 비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구글이 'Don't be evil'이라는 모토를 사용하는 것은 자사의 서비스가 가진 사회적 영향력을 남용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포탈이 단기적인 트레픽 유지에 급급하는 대신, 더 넓은 안목에서 사용자가 좋은 컨텐츠를 만들고 폭넓게 공유할 수 있는 플렛폼을 제공한다면 장기적으로는 영리 추구과 사회적인 책임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너무 순진한 생각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