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가 구글과 싸우는 법 - 검색엔진 연구자의 관점
검색산업동향 :
2010. 3. 25. 15:46 By LiFiDeA
요즘 우리나라 인터넷에 대한 걱정들이 많습니다. 얼마전 저도 한국 인터넷을 술자리에 비유한 글을 썼는데, '한국 인터넷에서 잘못 끼워진 첫 번째 단추, 네이버'라는 제목의 글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글에 언급된 검색 성능에 대한 비교가 100% 공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검색 결과의 바탕이 되는 컨텐츠 자체가 다르기에), 적어도 네이버로 대표되는 포탈의 비즈니스 모델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문제제기는 탁월합니다.
여기서는 이 글을 읽으며 떠오른 몇가지 의문을 정리하고 검색 연구자로서 나름의 대안을 제시해보고자 합니다. 이후에 언급한 '네이버'는 한국의 포탈을 대표하는 개념으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네이버는 evil인가?
예전에 iPad에 관한 글에서 플렛폼 전략을 언급했는데, 네이버는 사용자가 컨텐츠를 생산하고 배포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플렛폼 기업입니다. 여기까지는 탓할 일이 아닙니다. 네이버의 문제는 플렛폼 기업으로서의 역할에 있습니다.
우선 첫번째 문제는 인터넷이라는 개방된 플렛폼 안에 외부와의 소통이 차단된 닫힌 플렛폼을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네이버가 우리나라 인터넷 트레픽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관계로 우리나라 인터넷 전체가 외부에 대해 닫힌 결과를 낳았습니다. 네이버에서 외부 글을 검색하거나 외부에서 네이버의 컨텐츠를 찾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반면에 구글은 인터넷이라는 플렛폼의 사용성을 높이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네이버와 구별됩니다.
두번째 문제는 플렛폼 기업으로서 도덕성을 지키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구글의 Don't be evil 모토나, 혹은 최근 타산지석이 되고 있는 애플의 앱스토어 심사 문제에서 알 수 있듯이 플렛폼이라는 생태계를 운영하는 주체는 모든 참여자에게 (심지어는 경쟁 기업에게까지도) 공정성을 유지해야 하며, 이를 어겼을 경우 엄청난 비난을 감수해야 합니다. 플렛폼 운영자로서의 지위와 수익은 참여자들이 만들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저는 포탈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전 글에서 언급했듯이 포탈은 한국 인터넷을 광장이 아닌 술자리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처럼 몇개의 닫힌 포탈이 대부분의 웹 트레픽을 과점하는 구도가 지속되고, 더욱이 포탈 내에서도 제대로 된 컨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인센티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인터넷 컨텐츠의 질적 저하는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인터넷이 갖는 지식 정보의 공유 플렛폼으로서의 기능을 감안하면 이는 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의 문제입니다.
글 하나를 찾거나 등록하기 위해 몇개의 사이트를 뒤져야 하고, 막상 검색 결과조차 광고로 도배되어 있다면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초기화면에 선정적 기사로 가득하다면, 공들여 쓴 글이나 비디오가 갑자기 삭제되기라도 한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네이버의 전략은 지속 가능(sustainable)한가?
기업이 사회적 책임과 수익성은 별개의 문제이기에, 만약 사회적으로 최선이 아닐지라도 수익을 낼 수 있다면 개별 기업으로서는 합리적인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네이버의 전략이 장기적인 생존을 보장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듭니다. 그 이유는 앞서 언급한 플렛폼 기업으로서의 특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양질의 컨텐츠를 공급할 수 있는 CP(e.g. 파워블로거)의 입장을 상상해봅시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컨텐츠에 대한 통제와 소유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포탈 블로그나 지식인에 종속되기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며, 따라서 포탈은
현재 상태로는 좋은 컨텐츠를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인터넷 시대에 검색되지 않는 정보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검색 광고의 남용과 기술적인 한계로 말미암아 존재하는 컨텐츠를 효과적으로 제공하는 것도 어려워 보입니다.
한때 인터넷 그 자체였던 야후!의 사례를 들어봅시다. 야후!는 지금도 단일 웹사이트로는 인터넷상에서 가장 방대한 컨텐츠를 자랑하지만, 결국 구글에 검색 뿐만 아니라 인터넷의 관문으로서의 주도권을 내주었습니다. 스스로를 미디어 회사로 규정한 야후!는 막대한 양의 자체 컨텐츠와 편집 노하우를 경쟁력으로 내세웠지만, 전세계의 컨텐츠를 모두 모아 원클릭에 제공하는 구글 검색에는 당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당장 시장 판도가 바뀌지는 않겠지만 추세는 명확해 보입니다. 컨텐츠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모바일 웹의 대중화로 가벼운 검색엔진이 각광받게 되며, 특히 구글에서 막대한 투자를 지속하고 있는 기계번역 기술이 사용 가능한 수준으로 좋아진다면, 상황은 급속도로 달라질 수 있습니다. 검색엔진을 바꾸는데는 단 5초도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해봅시다.
네이버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만약 네이버의 현재 전략이 장기적인 생존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대안은 무엇일까요. 당장 모든 컨텐츠를 외부에 개방하고 초기화면을 구글처럼 바꿔야 할까요? 특히 이부분은 검색 기술의 비즈니스적 가치와 관련되기에 검색 연구자로서 흥미있는 주제입니다.
얼마전에 언급했듯이 구글의 검색기술은 하루아침에 쌓인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10년째 끊임없는 혁신을 지속하고 있으며, 검색 및 기타 서비스를 위해 하드웨어와 운영체제에서 시작하는 풀스택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세계 최고의 엔지니어와 과학자들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마이크로소프트가 심혈을 기울여 내놓은 Bing Search조차 아직 구글의 아성에 아직 별다른 상처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회사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정면 승부를 피하면서 고유의 경쟁력을 확보해야 할 것입니다. 우선, 자사의 비교우위는 지켜가야 할 것입니다. 예컨데 네이버의 현재 경쟁력은 컨텐츠에 있는데 이를 구글 검색에 그대로 노출시키는 것은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는 것과 다름없을 것입니다. 우선 외부 컨텐츠에 대한 검색을 강화하면서 자체 컨텐츠를 서서히 공개하는 편이 나아 보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포탈이 자체 데이터 공개를 꺼리는 이유를 이해못할바는 아닙니다.
어쨌든 컨텐츠 개방은 피할 수 없을 것이며, 그 이후에도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검색 기술을 지속적으로 확보해야 합니다. 앞서 구글의 막강한 경쟁력을 언급했지만 검색 알고리즘(PageRank)과 대용량 서비스를 위한 기반 기술(Map-Reduce / BigTable)은 논문이나 오픈소스 등의 형태로 공개된 부분도 많습니다. 또한 네이버가 보유한 컨텐츠에 대해서는 자체 DB의 Metadata나 사용자 Log를 검색을 위한 Feature나 랭킹 학습을 위한 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기에 여전히 외부 검색엔진에 대해서는 훨씬 유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직 기대만큼의 성공은 아니겠지만, 구글과 경쟁하기 위한 마이크로소프트 Bing Search의 전략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우선 Search Engine대신에 Decision Engine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구글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여행이나 쇼핑 부분을 집중 흥보했습니다. 검색 품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한편 구글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인터페이스 측면에서도 여러가지 혁신을 이루었습니다. 이런 전략에 컨텐츠 오너로서의 장점과 한국 유저에 대한 이해를 결합한다면 승산이 있지 않을까요.
마치며
삼성전자와 iPad에 관한 글에서 언급했지만, 모든 것이 모든 것과 연결되는 시대에 문호를 닫고 공정한 룰을 따르지 않는 것은 근시안적인 전략입니다. 대한민국 인터넷 사용자로서 포탈의 변화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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