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들의 여가중 흔한 것이 한국 TV 시청입니다. 평소 TV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니었지만 최근에 방영한 '나는 가수다' 를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단순 오락 프로그램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이 프로그램의 의의, 그리고 이로 인한 논란의 파장은 작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여기서는 '나가수'의 긍정적인 측면을 생각해 보려 합니다.

기득권에 대한 정면 도전

본 프로그램의 방송 초기부터 포멧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진중권씨 같은 분은 프로그램 자체가 넌센스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평균 경력 10년의 정상급 가수들 중에 우열을 가린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황당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프로그램의 의의를 높게 평가합니다. 실력보다 자격을 우선시하는 우리나라의 풍조에 도전한다는 측면을 주목하기 때문입니다.

올해가 데뷔 20주년이라는 김건모를 비롯해 첫 출연자 7명은 모두 자타가 공인하는 정상급 가수이고, 이런 의미에서 소위 말하는 '기득권층'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가수들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지만 (오히려 새로운 도전에 응한 용기를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고 엄밀한 평가시스템 없이 보장된 지위는 조만간 내실을 잃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첫번째 탈락자로 논란의 초점이 되었던 김건모의 재도전에 관련된 다음 기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노래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김건모의 이 떨리는 손에서 진심이 느껴졌다고 평했다. "천하의 김건모가 마이크 잡은 손을 그렇게 떨다니..", "20년차 가수가 그렇게 손을 부르르르 떠는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손이 떨리는 압박과 긴장속에서도 음이 나가지 않고 제대로 무대를 마친 것에 박수를 보낸다", "손 떠는 것에서 비장함이 느껴졌다" 등의 반응이 줄을 이었다.  

김건모는 인터뷰를 통해 "'나는 가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프로그램이다"라며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 나를 관리하게 됐고 다시 새로운 발을 내 딛는 계기가 됐다. 이 프로그램은 나를 출발선에 똑바로 설 수 있게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언제나 당당하고 여유롭고 위풍당당했던 20년차 가수 김건모의 떨리는 손은 이 프로그램의 핵심일지도 모른다. 자칫 오만해진 마음을 버릴 수 있었던 기회. 광풍같은 비난 속에 어렵게 얻은 기회를 최고의 노래로 보답해 준 김건모는 가수다.
'나가수'는 이처럼 대중음악계의 기득권층의 정점을 구성하는 7인의 가수에게 대중의 평가라는 (완벽하지는 않을지라도) 정직한 잣대를 들이댔습니다. 그리하여 그들 스스로도 놀랄 정도의 최고의 역량을 끌어내는 결과를 낳았고, 결국 대중들에게는 많은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타국에서 '좋은 음악'에 항상 굶주려있는 저같은 사람에게도 정말 오랜만에 맛보는 청량제였습니다. 결국 프로그램 자체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출연 가수들도 대체로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습니다. 

미국에 와서 많이 느끼는 점이지만, 우리나라에는 참 '기득권'이 많습니다. 한번 얻기는 쉽지 않지만 (그리고 그 과정에서는 비교적 공정한 잣대가 적용되지만) 일단 획득 후에는 안심할 수 있는 그런 자격 말입니다. 명문대 입학, 온갖 종류의 고시, 임용 후에는 별 실적없이도 자리를 보전할 수 있는 일부 직장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됩니다. 여기서는 '자격' 자체를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한번 OO는 영원한 OO식으로, 자격의 획득 이후에 전혀 평가나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는 '성역화'를 우려하는 것입니다. 절대 권력은 결국 부패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약속 이행' 대한 주의 환기

'나가수'가 우리사회에 던진 또하나의 화두는 '원칙의 가치' 입니다. 오락 프로에서의 '원칙'이 갖는 무게에 대한 다양한 논란이 있었지만, 저는 '김건모 재도전'의 혼란이 수습되는 과정이 우리나라에 '사회적 약속의 이행'라는 도덕규범이 수립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에 와서야 비로소 느낀 것이지만, 우리나라는 모든 종류의 규칙 위반에 대해 상당히 관대한 편입니다.  좋게 보면 '정'의 문화이지만, 소속 조직의 비리를 고발하다 되려 피해를 보는 경우도 많고, 교통 범칙금 같은 경우에도 잘 이야기하면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지켜야 할 것'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반면에 미국이라는 나라는 어떤 규칙도 예외없이 적용하는 비정함에 정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

'나가수'의 경우에도 프로그램 중간에 몇번이나 강조했던 규칙을 처음부터 어겼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퇴출 대상이 '최고참' 김건모가 아니었더라도 그런 사태가 벌어졌을지 상상해보면, (1회에서 7위를 한 정엽에 대한 동료 가수들의 반응을 떠올려봅시다) 원칙에 대한 경시, 그리고 그릇된 연공서열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쩄든 많은 국민들이 이에 들고 일어났고, 결국 프로그램 결방 및 가수의 자진 사퇴라는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심지어 오락 프로그램에서도)  '사회적 약속'을 중히 여기고 실천하는 문화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희망해 봅니다. 

마치며

 위에서 언급한 우리 사회의 두가지 병폐 '기득권의 성역화' 및 '사회적 약속 경시'는 과정은 다르지만 결과는 같습니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들의 힘을 빼앗고, 기득권이나 요령에 기대어 이득을 보려는 사람들이 활개치게 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병폐의 지속이 사회의 장기적인 발전을 저해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안철수 교수님이 말하는 기득권의 과보호 역시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가수'가 가요계에 일으킨 신선한 바람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이 프로그램에 대한 다른 시각을 다룬 컬럼을 소개하면서, 마지막으로 몇 가지 생각거리를 던져 봅니다. 여러분의 의견을 답글로 남겨주세요!

-. 구성원간의 경쟁은 어떨 때 사회 발전에 도움을 줄까요? '나가수'는 어떤가요? 
 
-. 사회 다른 분야에서 건전한 경쟁을 통해 좀더 발전할 수 있는 경우가 있을까요?

-. (마무리는 가볍게^^) 여러분은 어떤 가수가 좋으셨나요? 앞으로 더 보고 싶은 가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