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좌우명 - 줄 서지 않는 삶

Essay : 2011. 8. 8. 16:00   By LiFiDeA
오늘 제가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하는 위자드웍스 표철민 대표의 글을 읽고, 불현듯 제 '좌우명'을 돌이켜보게 되었습니다. 아직 젊은 나이에 좌우명이라면 우습지만, 나름의 원칙과 방향을 정해놓은 삶과 그렇지 않은 삶에는 장기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누구에게 보이기보다는 제 자신을 가다듬는 의미에서 이 글을 씁니다.

줄 서지 않는 삶

어느 젊은 마음이 산사의 풍경처럼 평온하랴만은, 제가 유학을 준비하던 시절을 돌이켜 보면 참으로 갈등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경영학 복수전공을 거의 마치고 3년간의 회사생활을 경험한 직후, 가장 자연스러운 선택은 회사에 취업하는 것이었지만 마음은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학원 유학이 드문 선택은 아니었지만, 저의 경우 전공을 컴퓨터로 바꾼다는 리스크가 있었고 주변 환경도 유학에 썩 호의적은 편은 아니어서 적잫이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혼잡한 시간대에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도착한 지하철에 사람들이 다투어 끼어들어 난장판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 무심코 그냥 다음 차를 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다음 차는 텅 비어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이후부터 지나치게 혼잡한 지하철이나 버스는 그냥 보내는 습관이 생겼고, 매우 혼잡한 차 다음에는 비교적 한가한 차가 오는 경향을 발견했습니다.



얼핏 매우 사소한 일이지만, 저는 이 사건에서 제 좌우명이라고 할만한 원칙을 세웠습니다. 바로 '줄서지 않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여기서 '줄 서는 것'은 물리적인 줄 뿐만 아니라 삶에서 내려야 할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도 적용됩니다. 학교 및 직장을 선택하는 것도, 쇼핑을 하거나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행위도 '줄 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줄'은 사람이 많은 곳에는 어디에나 생기게 마련아니, 줄 서지 않는 삶은 다수의 편에 서는 것을 가급적 피하는 삶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줄서지 않는 삶은 자신의 선택을 보증해줄 '다수'와 함께할 수 없는 외로운 삶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자신에게 충실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하기에 '깨어있는(mindful)' 삶입니다. 그것이 아마 제가 '줄 서지 않는 삶'이라는 원칙에 매료된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매 순간을 무신경하게(mindless) 흘려보내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삶이 다른 누군가의 의사결정을 답습하는 것으로 점철된다면 '나'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요?

줄 서지 않는 이유

모든 원칙이 그렇듯이 '줄 서지 않는 것'이 금칙(dogma)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다수의 선택이 지혜로운 경우가 사실 더 많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면 혼자 조롱거리가 되기 쉽상입니다. 줄을 서지 않겠다는 결정은 이런 의미에서 항상 사려깊은 것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같은 값이면(other things being equal) 소수의 편에 서는 것이 개인, 그리고 사회적인 측면에서 더 낳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이유는 앞서 밝혔듯이 좀더 순간순간 깨어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다수의 선택은 '무난한' 경우가 많지만, 아주 탁월하기도 힘듭니다. 표철민 대표도 썼지만, 사람이 더 몰리는 곳에는 경쟁이 있게 마련이고, 이는 같은 수준의 결과를 얻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투입해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다수의 선택이지만 많은 경우 초기 몇 명만이 실제 선택(conscious decision)을 하고 나머지 대다수는 이를 무작정 추종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저는 또한 '줄 서지 않는 삶'이 많아질수록 더 다양한, 그래서 더 풍요로는 사회가 된다고 믿습니다. 각자가 자신에게 맞는 선택을 할수록 혼잡 및 과도한 경쟁에 따르는 비용도 줄어듭니다. (사람들이 각자 원하는 시간에 출퇴근을 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해 봅시다.) 또한 '줄 서지 않는 구성원'은 집단 의사결정의 품질을 높입니다. 누군가가 '해답'을 찾아낼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집단에서 모든 구성원이 독단적인 리더의 말을 따르는 '거수기' 역할을 할 경우보다 건강한 소수의견이 존재하고 경청되는 것이 장기적으로 집단의 발전에 유리할 것입니다.

안철수 선생님의 글에도 '성공의 정의가 하나밖에 존재하는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는 말이 나옵니다. 사회 모든 측면에서 (명목상으로나마) 다양성이 존중받는 미국에 비해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좋은 주거지' 등에 대한 굉장히 좁은 정의가 존재하는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이렇게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지 여행이라는 '장르'를 연 한비야씨나, 에전에 인간극장에 나왔던 명문대 출신의 산골 부부인 '장길연 / 김범준'씨 부부와 같은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큰 공헌을 했다고 볼수 있지 않을까요. 이들이 개척한 길을 따라 수많은 추종자가 나왔고, 많은 사람에게 '이렇게 사는 방법도 있구나'라는 깨달음을 주었으니까요.

줄 서지 않는 삶을 향하여

얼핏 간단하게 들리지만, '줄 서지 않는 삶'에는 상당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자신의 판단을 신뢰할 수 있어야 다수의 선택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표철민 대표는 좋아하는 것을 찾을 수 있는 여유를 선물하라고 조언합니다. 항상 의무에 시달리고 필요를 좆기보다, 일 이외의 삶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균형감각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학원 생활 4년을 마치고 조만간 미래에 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될 요즘, 다시금 상념에 빠지는 나날이 늘어갑니다. 하고 싶은 연구를 하겠다는 처음의 날 선 각오를 잊고 적당히 현실타협적으로 변하려는 스스로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요즘도 종종 '줄 서지 않는 삶'이라는 좌우명을 되뇌이고, 그때마다 마음에 새로운 각오가 차오르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여러분의 좌우명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