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와 스포츠맨십 - 야구에서 퍼팩트 게임보다 소중한 것은
Essay :
2010. 6. 14. 14:17 By LiFiDeA
어제 우리나라가 그리스를 상대로 통쾌한 승리를 거두었죠? 이럴 때는 특히 서울광장에서 얼싸안고 소리지르고 있을 친구들이 부럽지만, 고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기만하니 스포츠의 힘이 참 대단합니다. 며칠 전 스포츠가 줄 수 있는 교훈을 실감한 일이 있어 소개합니다.
보도를 통해 많이들 아시겠지만, 최근 미국에서 메이저리그를 떠들썩하게 했던 일이 있습니다. 퍼팩트 게임을 기록하던 디트로이트의 투수 존 갈라라가(John Galarraga)가 9회 2사후에 마지막 타자를 상대로 잡아낸 내야땅볼 아웃을 1루심 짐 조이스(Jim Joyce)가 안타로 판정하여 기록을 놓치게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모두들 명백한 오심을 범한 심판을 질책하고 기록을 놓친 투수를 위로했었는데요, 훈훈한 뒷이야기가 소개되면서 여론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 뒷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우선 존은 오심 직후 그 당사자인 1루심을 향해 미소를 보이고 (속은 탓겠지만) 다음 타자를 침착하게 처리하여 경기를 마무리지었습니다. 경기 직후 비디오 판독으로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1루심 짐은 곧바로 존에게 다가가 눈물을 글썽이며 진심어린 사과를 하였고, 존은 그에게 "사람이면 누구나 실수를 하는 법"이라며 오히려 위로의 말을 건넸답니다. 다음날 존은 경기 시작전 행사에서 아직도 죄책감에 빠져있는 짐의 손을 잡으며 공개적인 용서의 뜻을 전했습니다.
이런 사실이 나중에 보도되고, 평생의 위업이 될 수도 있었던 기록을 다른 사람의 실수로 날렸음에도 따뜻한 관용을 보여준 투수와, 자신의 잘못을 바로 인정하고 사과한 심판 모두에게 역사에 남은 품위있는(classy / noble) 행동이라는 찬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결국 투수는 기록상의 '퍼팩트 게임'을 잃었지만, 그 이후의 행동으로 그보다 훨씬 값진 영예를 얻은 것입니다. (존은 이 영웅적인 행동으로 주간 MVP에 선정되기도 합니다.)
흔히 스포츠의 목표를 더 나은 기록을 세우고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스포츠의 더 큰 목표는 '인간으로부터 최선의 모습을 끌어내는 것'에 있지 않을까요. 이런 모습은 대부분 한계를 뛰어넘는 기록이나 경기력이라는 형태로 발현되지만, 때로는 존과 짐의 경우에서처럼 실수를 인정하고, 상대방의 과오를 덮어주는 차원높은 인간미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인지, 오심 논란에도 불구하고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는 야구의 전통에 위배되는 비디오 판독 등의 기술적인 해결책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야구계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올 시즌에 스트라이크 존이 갑자기 넓어져 오심 논란이 자주 벌어지고, 이것이 불씨가 되어 그라운드에서의 퇴장 사태가 폭증했다고 합니다. '경기시간 단축'이라는 그다지 설득력없는 이유로 야구라는 스포츠의 핵심이 되는 규칙을 인위적으로 바꾼 KBO측, 그리고 팬들 앞에서 서로 욕설과 삿대질을 하는 선수단 및 심판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씁쓸한 기분이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 대표팀이 미국과 대등한 경기를 펼치기는 했지만,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아직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키피디아는 스포츠맨쉽(sportsmanship)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Sportsmanship expresses an aspiration or ethos that the activity will be enjoyed for its own sake, with proper consideration for fairness, ethics, respect, and a sense of fellowship with one's competitors. Being a "good sport" involves being a "good winner" as well as being a "good loser".
위 정의는 '스포츠'라는 행위의 본질이 '그 자체로서 즐기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우리 축구 대표팀 선수들이 인터뷰에 '반드시 이기겠다' 보다는 '경기를 즐기겠다'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변화입니다. 이번 월드컵에서의 좋은 성적은 이러한 태도 변화에도 원인이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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