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까지 4회에 걸쳐 1월 한달동안 제 생활에서 수집한 데이터 분석 결과를 올렸습니다. 그동안 과정없이 결과만 올려왔는데, 오늘은 데이터 수집 및 분석 과정을 좀더 자세하게 써볼까 합니다. 궁금해하시는 분들도 있었고, 이런 노력이 제 스스로 방법론을 체계화하는데도 기여하지 않을까 하는 바램입니다. 

목표 : 삶의 순간 순간을 최선으로 만들기

다소 추상적으로 들리지만, 저의 Self-tracking 목표는 항상 일관되게 '스스로 최선이라고 느낄 수 있는 순간순간을 보내기'입니다. 이는 포괄적인 의미에서 '행복도'라고 부를수도 있을 것이며, 어떤 객관적인 지표가 아닌 자신의 직관에 의존한다는 측면에서 정서적이며 현재 지향적인 지표입니다. 이를 질문의 형태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주어진 일(시간)을 진정으로 즐기고 있는가?

사실 '최선의 순간'이라면 단지 즐기는 것을 넘어 좋은 결과 및 중장기적 의미를 고려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즐거움' (혹은 행복)으로 요약한 이유는, 어떤 일을 진심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직관적으로 최상의 일을 최선을 다해 하고 있다는 것을 함축(imply)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당장 즐겁더리도 마음 속에서 거리낌이 있다면 진정으로 즐기지 못할 것입니다.

물론 종종 즐거움보다는 '필요'를 위해 어떤 일을 해야하는 상황에 마주하게 됩니다. 또한 예기치 못한 상황 등으로 어려움에 처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평가에는 항상 주변 상황에 대한 고려가 필수적입니다. 예컨데 몸이 아픈 상황에서 비교적 일을 잘 마쳤다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구제적으로, 저는 다음 1~5의 스케일로 아침/점심/저녁의 생활을 평가합니다. 

1 : 최악 : 기록적인 실패, 삶에 지속적인 악영향
2 : 부정 : 기대에 못미침
3 : 보통 : 평균적임. 특이사항 없음
4 :  긍정 : 기대 이상
5 :  최상 : 기록적인 성공, 자신의 한계를 넒힘
위 평가 항목을 보면 주로 스스로의 '기대'에 근거하여 평가가 이루어지는데, 이는 어제의 자신보다 더 나아지기를 바라는 바램을 담는 것입니다. 이중, 최악 혹은 최상의 평가치는 그 결과를 나중에까지 기억해두어야 될 정도인 경우에만 부여합니다. 매우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가치가 반영된 평가기준이기는 하지만, 거의 10년간 어떤식으로든 평가를 내려온 탓에 제게는 매우 익숙한 방식입니다. 

데이터 수집 : Evernote로 일지 작성

위 목표를 염두에 두고 저는 그동안 다양한 기법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하기 이전인 2002년에서 2006년까지 스스로 개발한 프로그램 (설명은 작년 포스트 참조) 을 사용했었습니다. 하지만, 좋은 프로그램도 많이 나왔고 스스로 개발 및 유지보수하는 노력도 만만치 않아 어느순간 '있는 프로그램을 잘 쓰자'는 쪽으로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작년까지는 온라인 스프레드시트를 사용해 왔습니다. 온라인 스프레드시트를 잠깐 소개하면, 아래와 같은 시간표에 주요 일정에 대한 계획 및 진행사항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스프레드시트의 특성상 통계 및 그래프 처리가 간편하고, 온라인 서비스 (Google Docs)를 사용하면 어디서든 데이터에 접근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고정된 틀에 넣기에는 데이터에 부가정보가 많았습니다. 또한 테이블에 매일 삶의 기록을 입력하는 것은 '손맛'이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하루에도 몇번씩 기록해야 한다면 중요한 고려사항입니다 ;)

그래서 최근에 사용하고 있는 방식이 주간 일지를 Evernote로 쓰는 것입니다. 그날 그날의 느낌, 한 일 및 결과, 보고 들은 것등을 한곳에 기록할 수 있으니 편리하며, 줄글 및 서식을 섞어 쓸 수 있으니 형식에도 구애를 받지 않게 됩니다. Evernote 컨텐츠는 PC / iPad / iPhone에 모두 동기화된다는 점도 데이터 접근성을 높입니다. 아래는 제가 사용하는 Template의 일부입니다. 


위의 Google Doc문서과 비슷한 내용을 담고있지만, 훨씬 더 유연하게 기록할 수 있습니다. (예컨데 오전 평가치가 4에서 3으로 바뀌었다면 4-3으로 기록합니다.) 기본적인 일정 목록에 다양한 기호를 정의하여 일정의 특이사항을 기록합니다. 일정을 기록하다보면 종종 뒤로 미루어야 할 일이 생기는데 이런 경우 일정 앞에 '>'기호를 사용하여 이를 표시합니다. 주단위로 문서를 생성하는 이유는 한주의 일정을 한 페이지내에서 볼수 있기 위함입니다.

기록 방법은 앞으로 더 보완해야겠지만, 그동안 얻은 교훈은 최대한 자신에게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해야 더 풍부한 내용을 지속적으로 기록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즉, 분석단계에서의 편리함도 중요하지만, 제대로된 데이터가 입력되지 않으면 분석은 가치를 잃습니다. 그것이 제가 얼핏 더 Low-tech로 보이는 줄글 및 목록을 결합한 형태의 기록방식을 사용하는 이유입니다.

데이터 분석 : Excel + R

수집된 데이터는 매주 엑셀 Sheet에 옮겨 기록합니다. 시간이 날때 Evernote API를 사용해 주간일지 문서에서 평가치 등등을 자동으로 추출하는 스크립트를 만들 생각입니다만, 평가를 위해 주간 일정을 옮겨적는 과정에서 그주에 있었던 일을 돌이켜보는 기회를 얻는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이 과정이 끝나면 그동안 여기 올렸던 컬러풀한 테이블이 나옵니다. 마지막으로 이 테이블을 R에 넣어 분석합니다. 데이터가 작은 관계로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다양한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 회귀분석 (regression), 시계열 분석 등 좀더 다양한 방식을 시도할 생각이지만, 아직은 변수간 상관관계 분석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작은 데이터에 대한 간단한 분석을 위해 너무 복잡한 기술을 동원할 필요는 없다는 것도 그동안 얻은 교훈입니다. 

글을 마치며

처음에는 (지금도 가끔) 자신의 생활을 숫자로 평가한다는 것에 거부감을 가졌었습니다. 하지만, 종종 (스스로에게) 더 좋은 평가를 받기위해 노력하는 자신을 보면서, 그리고 수집된 데이터가 일깨워주는 교훈을 느끼며 이런 노력이 단지 시간낭비는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스스로를 파악하고 변화시키기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참조 : Quantified Self, The Happiness Project )

1월의 분석은 현상 파악에 집중했지만, 2월부터는 변화를 실천하며 이것이 삶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볼 생각입니다. 즉, 이미 대조군(control group)이 마련되었으니, 실험군을 만들어 차이를 지켜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삶 자체가 거대한 실험처럼 느껴지는군요. 여러분은 지금, 어떤 실험을 하고 계신가요?

새해 첫주, 시작은 잘 하셨나요? 최근에 어느분이 트윗해주신 인포그래픽을 보니 75%의 사람들이 첫주까지는 새해 결심을 지킨다고 하니, 대부분 잘 하시고 있으시라 믿습니다. 자기 개발 및 개인 정보 관리에 대해서 예전에도 썼었지만, 대학원에 있다보니 실천이 앎을 따르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새해에는 연구 논문이 아닌 실천을 통해 배워보고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런 결심의 일환으로 올해 초부터 매주 일정 시간을 지난 주를 돌아보고 다음 주를 계획하는데는 결심을 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한 주간 잘 했거나 아쉬웠던 일을 돌아보고, 밀린 메시지나 잔일을 정리하고, 배운 내용을 갈무리할 생각입니다. 이렇게 주기적인 재정비의 시간을 갖는 것은 Getting Things Done등의 여러 방법론에서 강조되는 내용이지만, 그동안 바쁜 일상에 제대로 실천하지 못했습니다.

삶에 대한 반성과 계획은 본질적으로 개인적인 활동이지만, 이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스스로를 동기부여하기 위해 본 블로그에 그 내용을 기록할 생각입니다. 지금까지도 블로그를 통해 결심과 변화의 순간을 기록하곤 했지만, 이를 좀더 체계화하여 계량적 분석을 하는것은 의미가 클 것 같습니다. 또한, 트위터 등 SNS를 통해 배우는 많은 배움을 곱씹어보고 소화하겠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반성 및 계획 (일정)
오늘은 첫 포스팅인만큼, 제가 반성 및 계획을 위해 최근에 사용하는 Self-tracking 방법을 간략히 소개합니다. 우선 저는 EverNote에 매주 Journal페이지를 만듭니다. 그리고, 매일 기상 및 취침시간, 그리고 하루를 3개의 기간으로 (오전/ 오후 / 저녁) 나누어 일정, 느낌 및 평가치 (1:worse - 5:best)를 기록합니다. 여기서 평가치는 환경, 기분, 결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해당 기간에 매기는 점수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더 자세히 쓰도록 하겠습니다.)

한해의 첫주인 지난주의 결과를 살펴븝시다. 아래 포는 날짜별 (전날의) 수면시간, 기상시간, 그리고 3기간 각각 및 평균 점수를 나타냅니다. 점수는 중간치인 3을 밑돌았을 때 빨간색, 이를 상회했을대 파란색으로 적었습니다. 아래 데이터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낼 수 있습니다.

1. 24시 취침 및 6시 기상을 계획는데, 기상시간이 대체로 계획보다 1시간 가량 늦었습니다.
2. 저녁 시간대의 점수가 아침 / 점심에 비해 평균적으로 낮습니다. 
3. 휴일이 낀 주초 / 주말의 점수가 주중(수/목)에 비해 낮습니다. 



위 테이블 컬럼간의 상관관계(correlation)을 살펴보니 몇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1. 늦은 수면 시간은 다음날의 점수를 전반적으로 악화시키고, 늦은 기상 시간은 오후/저녁 시간대에 비슷한 영향을 끼칩니다. 전반적으로 수면/기상 시간이 늦어질수록 평균점수는 낮아집니다.
2. 오전 시간대의 평가치는 저녁 시간대의 평가치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입니다. 반면에 오후 시간대의 평가치는 저녁과 양의 상관관계를 갖습니다. 
 

 
이처럼 간단한 데이터 수집 및 분석으로도 제 자신의 생활 패턴의 문제점 및 개선 방법에 대해 많은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번주의 분석을 통해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적절한 긴장이 만족스런 생활에 매우 중요합니다. 위 데이터는 긴장의 정도가 높은 주중 / 오전&오후에 가장 높은 점수를 기록함을 알려줍니다.
2. 주말 / 밤의 낮은 평점을 할 일이 정해진 주중에 비해 자유도가 높은 여가 시간을 제대로 보내지 못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3. 일찍 자고 일어나는 것은 생활의 전반적인 만족도에 중요한 영향을 끼칩니다. 

읽고 배운 것 (지식)
직접 경험만큼이나 값진 것이 블로그 및 SNS에서 접하는 지식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한번 읽고 지나가는 매체의 속성상 제대로 된 배움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매주 읽고 배운 것을 간단하게나마 정리해 나가려고 합니다. 

연구 관련
GymPact pays you for working out, charges if you skip  짐에 등록하고 운동하면, 운동을 건너뛴사람한테서 모은 돈을 돌려준다고. 동질적인 사용자 집단간의 금전 거래를 서비스 업체에서 중계하는 Social Computing의 새로운 유형이다. 
구글의 검색연구자가 가르쳐주는 검색을 잘 하는 법 전문가에게 물어라 / 분야별&사이트별 검색엔진을 사용해라 / 검색 연산자를 활용해라 / 동의어&유의어를 찾아 사용해라 / 정보를 올리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라.
http://fathmapp.com 직감적 조작성이 눈에띄는 일정 및 시간관리 앱 'fathm' 시간관리 프로그램은 수도없이 존재하지만, 도메인에 적합한 시각화 및 UI를 통해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한다.

기타
논문은 이렇게 쓰는 겁니다~!| 천재 언어학자 Joan Bresnan이 어떻게 언어학계를 뒤흔든 논문을 썼는가 -- "좋은 논문의 조건은 '기존 생각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자신만의 창조적인 아이디어'이다. "
인문계열 교수되는 법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논문'이다. 하지만, 좋은 논문을 많이 쓰려면, '비판적 사고'와 '창의적 아이디어'가 필요한데, 이것은 '인문학적 상상력'의 영역이다
문제해결 참고용 마인드맵 문제 해결은 '진짜 문제인지 확인하기' / '아는 문제로 변형하기'에서 출발한다.
필드림님 새해인사  자기 인생에 대한 오너십을 가져야 한다.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기를 포기한다면 누가 나를 믿고 일을 맡기겠는가?

마치며
블로그에 처음으로 주간 리뷰를 적는 것이라 오늘은 시간이 적잫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한 주의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느낌이 노력을 보상하고도 남는 것 같습니다. 올 한해는 웬지 작심삼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도 모두 화이팅입니다!

나의 좌우명 - 줄 서지 않는 삶

Essay : 2011. 8. 8. 16:00   By LiFiDeA
오늘 제가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하는 위자드웍스 표철민 대표의 글을 읽고, 불현듯 제 '좌우명'을 돌이켜보게 되었습니다. 아직 젊은 나이에 좌우명이라면 우습지만, 나름의 원칙과 방향을 정해놓은 삶과 그렇지 않은 삶에는 장기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누구에게 보이기보다는 제 자신을 가다듬는 의미에서 이 글을 씁니다.

줄 서지 않는 삶

어느 젊은 마음이 산사의 풍경처럼 평온하랴만은, 제가 유학을 준비하던 시절을 돌이켜 보면 참으로 갈등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경영학 복수전공을 거의 마치고 3년간의 회사생활을 경험한 직후, 가장 자연스러운 선택은 회사에 취업하는 것이었지만 마음은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쪽으로 기울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학원 유학이 드문 선택은 아니었지만, 저의 경우 전공을 컴퓨터로 바꾼다는 리스크가 있었고 주변 환경도 유학에 썩 호의적은 편은 아니어서 적잫이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혼잡한 시간대에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도착한 지하철에 사람들이 다투어 끼어들어 난장판이 벌어지는 것을 보고 무심코 그냥 다음 차를 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다음 차는 텅 비어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이후부터 지나치게 혼잡한 지하철이나 버스는 그냥 보내는 습관이 생겼고, 매우 혼잡한 차 다음에는 비교적 한가한 차가 오는 경향을 발견했습니다.



얼핏 매우 사소한 일이지만, 저는 이 사건에서 제 좌우명이라고 할만한 원칙을 세웠습니다. 바로 '줄서지 않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여기서 '줄 서는 것'은 물리적인 줄 뿐만 아니라 삶에서 내려야 할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도 적용됩니다. 학교 및 직장을 선택하는 것도, 쇼핑을 하거나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는 행위도 '줄 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줄'은 사람이 많은 곳에는 어디에나 생기게 마련아니, 줄 서지 않는 삶은 다수의 편에 서는 것을 가급적 피하는 삶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줄서지 않는 삶은 자신의 선택을 보증해줄 '다수'와 함께할 수 없는 외로운 삶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자신에게 충실하고,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하기에 '깨어있는(mindful)' 삶입니다. 그것이 아마 제가 '줄 서지 않는 삶'이라는 원칙에 매료된 이유였던 것 같습니다. 매 순간을 무신경하게(mindless) 흘려보내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삶이 다른 누군가의 의사결정을 답습하는 것으로 점철된다면 '나'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요?

줄 서지 않는 이유

모든 원칙이 그렇듯이 '줄 서지 않는 것'이 금칙(dogma)이 되어서는 곤란합니다. 다수의 선택이 지혜로운 경우가 사실 더 많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면 혼자 조롱거리가 되기 쉽상입니다. 줄을 서지 않겠다는 결정은 이런 의미에서 항상 사려깊은 것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같은 값이면(other things being equal) 소수의 편에 서는 것이 개인, 그리고 사회적인 측면에서 더 낳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이유는 앞서 밝혔듯이 좀더 순간순간 깨어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다수의 선택은 '무난한' 경우가 많지만, 아주 탁월하기도 힘듭니다. 표철민 대표도 썼지만, 사람이 더 몰리는 곳에는 경쟁이 있게 마련이고, 이는 같은 수준의 결과를 얻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투입해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다수의 선택이지만 많은 경우 초기 몇 명만이 실제 선택(conscious decision)을 하고 나머지 대다수는 이를 무작정 추종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저는 또한 '줄 서지 않는 삶'이 많아질수록 더 다양한, 그래서 더 풍요로는 사회가 된다고 믿습니다. 각자가 자신에게 맞는 선택을 할수록 혼잡 및 과도한 경쟁에 따르는 비용도 줄어듭니다. (사람들이 각자 원하는 시간에 출퇴근을 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해 봅시다.) 또한 '줄 서지 않는 구성원'은 집단 의사결정의 품질을 높입니다. 누군가가 '해답'을 찾아낼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집단에서 모든 구성원이 독단적인 리더의 말을 따르는 '거수기' 역할을 할 경우보다 건강한 소수의견이 존재하고 경청되는 것이 장기적으로 집단의 발전에 유리할 것입니다.

안철수 선생님의 글에도 '성공의 정의가 하나밖에 존재하는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는 말이 나옵니다. 사회 모든 측면에서 (명목상으로나마) 다양성이 존중받는 미국에 비해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좋은 주거지' 등에 대한 굉장히 좁은 정의가 존재하는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이렇게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믿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지 여행이라는 '장르'를 연 한비야씨나, 에전에 인간극장에 나왔던 명문대 출신의 산골 부부인 '장길연 / 김범준'씨 부부와 같은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큰 공헌을 했다고 볼수 있지 않을까요. 이들이 개척한 길을 따라 수많은 추종자가 나왔고, 많은 사람에게 '이렇게 사는 방법도 있구나'라는 깨달음을 주었으니까요.

줄 서지 않는 삶을 향하여

얼핏 간단하게 들리지만, '줄 서지 않는 삶'에는 상당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자신의 판단을 신뢰할 수 있어야 다수의 선택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표철민 대표는 좋아하는 것을 찾을 수 있는 여유를 선물하라고 조언합니다. 항상 의무에 시달리고 필요를 좆기보다, 일 이외의 삶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균형감각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대학원 생활 4년을 마치고 조만간 미래에 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될 요즘, 다시금 상념에 빠지는 나날이 늘어갑니다. 하고 싶은 연구를 하겠다는 처음의 날 선 각오를 잊고 적당히 현실타협적으로 변하려는 스스로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요즘도 종종 '줄 서지 않는 삶'이라는 좌우명을 되뇌이고, 그때마다 마음에 새로운 각오가 차오르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여러분의 좌우명은 무엇인가요?
'자기개발'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예전에는 학생이나 사회 초년생들이 관심을 갖는 주제였지만, '직장인들 사이에서 자기개발이 붐'이라는 식의 기사를 보면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는 주제가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특정한 외부적 자극이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를 발전시킨다는 것이 쉬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저의 경우에도 자기개발은 오랜 화두였지만, 관심과 의욕은 높으면서도 지속적인 실천이 쉽지 않은 까닭에 잦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자기개발의 가장 흔한 형태 - 독서

자기개발은 역시 독서을 통해 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방식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소위 '자기개발서'가 출간되는 책 중에 살당수를 차지하지만, 미국에서도 Self-help라고 하는 자기개발 분야는 출판물을 중심으로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자기개발을 위한 컨설팅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Life-coaching이라는 직업군까지 등장할 정도이니, 그 열기는 보통이 아닙니다. 아래 그림에서 보듯, '자기개발'에는 다양한 세부 분야가 존재합니다.



프랭클린 플래너나 GTD (Getting Things Done)등의 방법론과 툴이 결합된 형태를 제외하면, 전통적인 자기개발은 이처럼 책에서 본 내용을 개인 각자의 의지에 따라 실천하는 형태를 띕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몇가지 한계가 있습니다. 1) 책에서 설명하는 내용은 저자 입장에서 기술한 것이라 독자 개개인의 상황에 맞는 처방이 아닐수도 있습니다. 2) 책에서 설명한 내용을 이해한다고 해도 의지력만으로 지속적인 실천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3) 책에서 모든 내용을 다루고 있지는 않습니다. 각 개인의 고유한 문제나 필요에 대해서는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데이터에 근거한 자기개발 - Self-tracking

이런 한계에 대한 해결책으로, 최근 미국에서는 자기 삶에서 수집한 데이터에 근거하여 가설을 세우고, 이를 실험을 통해 검증하는 자기개발법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수집되는 데이터의 종류나 수집 방법에 따라 굉장히 다양한 형태가 있지만 이런 방식을 흔히 Self-tracking이라고 총칭합니다. 개인 정보를 수집한다는 측면에서 Self-tracking은 일종의 Life-logging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Life-logging이 다양한 포멧의 데이터 수집, 검색 및 시각화에 초점을 맞추는 데 비해, Self-tracking은 정량적인 데이터에 근거한 분석 및 행동 변화(Behavioral Change)에 집중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Self-tracking의 구체적인 사례는 현재 Pinoeer중 한명인 Gary Wolf가 Wired지에 기고한 글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를 잠깐 발췌해 소개합니다. 
 I got up at 6:20 this morning, after going to bed at 12:40 am. I woke up twice during the night. My heart rate was 61 beats per minute, and my blood pressure, averaged over three measurements, was 127/ 74. My mood was a 4 on a scale of 5. My exercise time in the last 24 hours was 0 minutes, and my maximum heart rate during exercise was not calculated. I consumed 400 milligrams of caffeine and 0 ounces of alcohol. And in case you were wondering, my narcissism score is 0.31 (more on that in a moment).
윗 글에 나타나듯, 자신의 신체 및 정신적 상태를 포함한 모든 정보가 계량화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계량화된 정보는 자기 자신에 대해 객관적이고 정확한 지식을 제공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지식의 축적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삶에 대해 어떤 책에서도 얻을 수 없는 통찰을 제공할 것입니다. 이러한 통찰이 스스로를 변화시키는데 사용될 수 있으리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누군가가 쓴 책을 읽고, 무작정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진단하고 나아가 해결책을 실험해볼 수 있는 것입니다. 

Self-tracking 경험을 공유하는 블로그 Quantified Self에 올라온 실제 사례를 살펴봅시다. Seth Roberts라는 사람은 버터를 먹거나 먹지 않고 정해진 유형의 수학 문제를 푸는데 걸리는 시간을 매일 측정하여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Seth는 이에 근거하여 버터에 포함된 영양소가 수학 문제 해결에 도움을 준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말합니다. 연구의 과학은 논외로 하더라도, 이런 '실험'은 작은 노력으로 개인이 자신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여러 요인을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니다.



왜 지금 Self-tracking인가?

이렇게 데이터에 근거하여 자신을 변화시킨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다이어트 프로그램에서 섭취 및 소비 칼로리를 기록하게 하는 것이나, 운동선수들이 정확한 측정을 통해 퍼포먼스를 향상시키는 등의 활동이 모두 일종의 Self-tracking에 해당할 것입니다. (이는 지난번에 소개한 Deliberate Practice의 개념과도 상통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Self-tracking이 최근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스마토폰 등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정보를 기록하고 업데이트할 수 있는 수단이 보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수많은 Self-tracking툴들이 iPhone 혹은 Android 앱이며, 그 수는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그중 많은 툴들이 Twitter등의 SNS서비스와 연동되어 자신의 목표달성 과정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나의 Self-tracking 경험

저 스스로 Self-tracking을 하고 있냐구요? 사실 저는 2002년부터 MyLEO라는 툴을 만들어 제 개인의 일정 및 지식을 관리해오고 있었습니다. MyLEO는 일정관리를 중심으로 하는데, 각 일정을 A부터 F까지 평가할 수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입력된 데이터는 다양한 방식으로 시각화될 수 있습니다. (아래 스크린샷 참조) 





약 3년간 툴을 만들면서 실험한 결과로 제 개인의 평균 행복도 (일정별 점수의 기간별 평균치)가 꾸준히 올라가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으니 (아래 차트), 어느 정도는 성공한 실험이었다고 볼 수도 있을까요? 대학원에 와서는 다른 실험에 바빠지면서 이런 종류의 '실험'을 계속하지는 못하였으나, 최근 들어 다시 시작하고 있습니다. (저의 최근 실험에 대해서는 다음 포스팅을 기대하세요 ;)



관련 자료 & 맺음말

 현재 Self-tracking에 관련된 가장 광범위한 정보는 Gary Wolf등 몇몇 사람들이 만든 Quantified Self라는 블로그를 통해 얻으실 수 있습니다. 이 블로그에는 전세계 각지의 Self-tracker들이 모여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Boston Quantified Self Meet-up에 참가하여 TrackYourHappiness등 여러 재미있는 스터디에 관한 발표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또한 Self-tracking은 Human-computer Interaction 및 Cognitive Psychology 분야의 학자들도 활발히 연구하기 시작한 분야입니다. 현재까지의 연구논문은 여기서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최근 HCI 분야의 가장 큰 학회인 CHI2010과 CHI2011에서는 이와 관련된 워크샵이 열리고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데이터를 기록하는 문제, 데이터 기록이 다시 개인에 미치는 영향 등  다양한 관련 연구주제가 존재합니다.

데이터에 근거한 의사결정이 모든 면에서 일반화되어가는 요즈음, 개인의 성찰 및 성장을 위해 데이터를 사용한다는 생각은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해 보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Self-tracking은 아직 미국에서도 이제 소수의 사람들 사이에서 확산되기 시작한 새로운 트렌드이지만, 앞으로 무한한 발전 가능성이 엿보이는 분야입니다. 자기 스스로 데이터를 수집해 삶을 변화시킨다는 생각, 너무 Geeky한가요? 여러분은 어떤 종류의 Tracking을 하고 계신가요? (아니면 하고 싶으신가요?)

관련 자료 / 툴 모음
http://quantifiedself.com/self-tracking-links-to-get-you-started/
 http://personalinformatics.org/tools

광고 한말씀 : 지금 제가 운영하는 'EduHow - 유학생 커플의 공부 뒤집기'블로그에서 독자 설문을 진행중입니다. 유학에 관심있는 많은 독자분들의 참여 부탁드립니다!  여기서 설문에 참여하시면 됩니다.
유학생들의 여가중 흔한 것이 한국 TV 시청입니다. 평소 TV를 자주 보는 편은 아니었지만 최근에 방영한 '나는 가수다' 를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단순 오락 프로그램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이 프로그램의 의의, 그리고 이로 인한 논란의 파장은 작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여기서는 '나가수'의 긍정적인 측면을 생각해 보려 합니다.

기득권에 대한 정면 도전

본 프로그램의 방송 초기부터 포멧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진중권씨 같은 분은 프로그램 자체가 넌센스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평균 경력 10년의 정상급 가수들 중에 우열을 가린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황당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 프로그램의 의의를 높게 평가합니다. 실력보다 자격을 우선시하는 우리나라의 풍조에 도전한다는 측면을 주목하기 때문입니다.

올해가 데뷔 20주년이라는 김건모를 비롯해 첫 출연자 7명은 모두 자타가 공인하는 정상급 가수이고, 이런 의미에서 소위 말하는 '기득권층'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가수들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지만 (오히려 새로운 도전에 응한 용기를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이고 엄밀한 평가시스템 없이 보장된 지위는 조만간 내실을 잃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첫번째 탈락자로 논란의 초점이 되었던 김건모의 재도전에 관련된 다음 기사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노래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김건모의 이 떨리는 손에서 진심이 느껴졌다고 평했다. "천하의 김건모가 마이크 잡은 손을 그렇게 떨다니..", "20년차 가수가 그렇게 손을 부르르르 떠는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손이 떨리는 압박과 긴장속에서도 음이 나가지 않고 제대로 무대를 마친 것에 박수를 보낸다", "손 떠는 것에서 비장함이 느껴졌다" 등의 반응이 줄을 이었다.  

김건모는 인터뷰를 통해 "'나는 가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프로그램이다"라며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됐다. 나를 관리하게 됐고 다시 새로운 발을 내 딛는 계기가 됐다. 이 프로그램은 나를 출발선에 똑바로 설 수 있게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언제나 당당하고 여유롭고 위풍당당했던 20년차 가수 김건모의 떨리는 손은 이 프로그램의 핵심일지도 모른다. 자칫 오만해진 마음을 버릴 수 있었던 기회. 광풍같은 비난 속에 어렵게 얻은 기회를 최고의 노래로 보답해 준 김건모는 가수다.
'나가수'는 이처럼 대중음악계의 기득권층의 정점을 구성하는 7인의 가수에게 대중의 평가라는 (완벽하지는 않을지라도) 정직한 잣대를 들이댔습니다. 그리하여 그들 스스로도 놀랄 정도의 최고의 역량을 끌어내는 결과를 낳았고, 결국 대중들에게는 많은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타국에서 '좋은 음악'에 항상 굶주려있는 저같은 사람에게도 정말 오랜만에 맛보는 청량제였습니다. 결국 프로그램 자체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출연 가수들도 대체로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습니다. 

미국에 와서 많이 느끼는 점이지만, 우리나라에는 참 '기득권'이 많습니다. 한번 얻기는 쉽지 않지만 (그리고 그 과정에서는 비교적 공정한 잣대가 적용되지만) 일단 획득 후에는 안심할 수 있는 그런 자격 말입니다. 명문대 입학, 온갖 종류의 고시, 임용 후에는 별 실적없이도 자리를 보전할 수 있는 일부 직장 등이 모두 여기에 해당됩니다. 여기서는 '자격' 자체를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한번 OO는 영원한 OO식으로, 자격의 획득 이후에 전혀 평가나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는 '성역화'를 우려하는 것입니다. 절대 권력은 결국 부패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약속 이행' 대한 주의 환기

'나가수'가 우리사회에 던진 또하나의 화두는 '원칙의 가치' 입니다. 오락 프로에서의 '원칙'이 갖는 무게에 대한 다양한 논란이 있었지만, 저는 '김건모 재도전'의 혼란이 수습되는 과정이 우리나라에 '사회적 약속의 이행'라는 도덕규범이 수립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에 와서야 비로소 느낀 것이지만, 우리나라는 모든 종류의 규칙 위반에 대해 상당히 관대한 편입니다.  좋게 보면 '정'의 문화이지만, 소속 조직의 비리를 고발하다 되려 피해를 보는 경우도 많고, 교통 범칙금 같은 경우에도 잘 이야기하면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하니 '지켜야 할 것'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반면에 미국이라는 나라는 어떤 규칙도 예외없이 적용하는 비정함에 정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

'나가수'의 경우에도 프로그램 중간에 몇번이나 강조했던 규칙을 처음부터 어겼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퇴출 대상이 '최고참' 김건모가 아니었더라도 그런 사태가 벌어졌을지 상상해보면, (1회에서 7위를 한 정엽에 대한 동료 가수들의 반응을 떠올려봅시다) 원칙에 대한 경시, 그리고 그릇된 연공서열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쩄든 많은 국민들이 이에 들고 일어났고, 결국 프로그램 결방 및 가수의 자진 사퇴라는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심지어 오락 프로그램에서도)  '사회적 약속'을 중히 여기고 실천하는 문화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희망해 봅니다. 

마치며

 위에서 언급한 우리 사회의 두가지 병폐 '기득권의 성역화' 및 '사회적 약속 경시'는 과정은 다르지만 결과는 같습니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들의 힘을 빼앗고, 기득권이나 요령에 기대어 이득을 보려는 사람들이 활개치게 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병폐의 지속이 사회의 장기적인 발전을 저해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안철수 교수님이 말하는 기득권의 과보호 역시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가수'가 가요계에 일으킨 신선한 바람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이 프로그램에 대한 다른 시각을 다룬 컬럼을 소개하면서, 마지막으로 몇 가지 생각거리를 던져 봅니다. 여러분의 의견을 답글로 남겨주세요!

-. 구성원간의 경쟁은 어떨 때 사회 발전에 도움을 줄까요? '나가수'는 어떤가요? 
 
-. 사회 다른 분야에서 건전한 경쟁을 통해 좀더 발전할 수 있는 경우가 있을까요?

-. (마무리는 가볍게^^) 여러분은 어떤 가수가 좋으셨나요? 앞으로 더 보고 싶은 가수는? 

인터넷 불통이 가져다준 마음의 평화

Essay : 2010. 12. 27. 07:08   By LiFiDeA
며칠 전 갑자기 집에서 사용하는 인터넷이 먹통이 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저희 집은 옆집의 컴캐스트 인터넷 계정을 무선으로 공유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면 옆집에서 해결해주기를 기다리는 것 이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얼마전 @estima7님꼐서도 비슷한 내용을 트윗하신걸 보았지만, 갑자기 인터넷이 되지 않으니 답답한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메일, 구글 리더, 트위터, 스카이프 등등의 커뮤니케이션은 물론이요, iPad와의 싱크를 위해 사용하는 DropBox, Google Docs 등의 모든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가 동작하지 않으니 일을 제대로 할수도 없었습니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한참을 기다려도 상황은 해결되지 않았기에, 조금 여유를 가지고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몇시간을 보내고 나자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인터넷이 없는 집에서의 시간이 너무나 평화롭게 느껴진 것입니다.

메일이나 블로그를 읽을 수도 없고 웹서핑을 할수도 없으니, 가능한 활동 범위가 훨씬 제한되는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선택의 제한이 오히려 평소에 중요하지만 긴급하지 않아 미루어 두었던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것입니다. 그 몇 시간동안에 언젠가 읽어야겠다고 출력했다가 한쪽에 밀쳐둔 논문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는 책 한권을 들고 (Society of Mind) 읽으며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일 이외의 무언가에 차분히 열중할 수 있는 경험은 참으로 오랜만이었습니다. 

지난 글에도 썼지만, 소셜 네트워크로 대표되는 인터넷의 무한한 가능성은 그 만큼의 (선택에 대한) 불안과 혼란을 초래합니다. 항상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하고, 전 세계의 정보를 원클릭으로 검색할 수 있는 구글의 시대에 컴퓨터 (및 기타 internet-enabled device) 앞에서 온전히 집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예전에 Is Google Making Us Stupid?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검색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검색 기술 발전이 가져올 수 있는 잠재적인 폐해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무었일까요? 그러한 distraction을 잠시나마 차단하는 것이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저희 집에서 일어난 '인터넷 사건'은 인터넷이라는 가능성의 세계를 차단했을 때, 오히려 남아있는 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해 주었습니다. 예전에 폴 그레이엄이 집에 인터넷을 하는 방을 따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썼던 것을 생각해보면, 저 혼자만의 생각은 아닌가 봅니다. "자유를 제한받은 곳에서 참된 자유가 발휘된다. 정신활동의 완전 연소는 어느 정도의 구속 없이는 성취하기 어려운 것 같다."는 시오노 나나미의 말도 다시금 떠오릅니다.

며칠만에 인터넷은 복구되었고, 다시 시작된 distraction속에 저는 며칠간 경험했던 평화로움을 다시 그리워하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집에서 인터넷을 사용하지 않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중입니다. 많은 인터넷 서비스에서 (이메일 / RSS / Calendar) 오프라인 사용을 가능하게 하는 애플리케이션을 제공하기에 인터넷이 되지 않아도 큰 불편함은 없으리라는 생각입니다. 

소셜 미디어의 홍수 시대에 살아남기

Essay : 2010. 11. 21. 12:11   By LiFiDeA
트위터 타임라인 5일치 따라잡는데 한시간 소요. 좋은 글을 많이 읽었지만, 절대 양보다도 지나치게 다양한 종류의 정보가 머리를 채워 복잡해지는 느낌. SNS는 일과중보다는 자투리시간에 하기 좋은 활동. 그래서 '막간'에 강한 스마트폰이 최적인 듯. 

@sokion: @lifidea 지나치게 동감해요. 이런 무작정 리스트 말고 뭔가 색다른 접근이 필요한 것 같은데. Priority Inbox같은 분석 툴도 필요해요. 트위터 가끔 들어오는 저로선 타임라인 따라잡기는 거의 불가능한 지경.

최근에 트위터에서 후배와 주고받은 대화입니다. 이처럼 다양한 종류의 소셜 미디어(Social Network Service -- SNS)의 등장이 그 장점만큼이나 많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것 같습니다. 하루에 몇 시간을 투자해도 소화하기 힘든 양도 문제이지만, 다양한 채널 (블로그/트위터/페북)에서 온갖 종류의 정보가 동시에 쏟아진다는 점이 더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한번에 한가지의 정보를 소화하는 독서와 달리, 트위터 메시지 각각에 담기는 전혀 다른 정보를 한꺼번에 소화하는 일은 더 큰 부담(Cognitive Overhead)으로 느껴집니다. 예전 글에 썼듯이, 잦은 Context-switching은 컴퓨터뿐만 아니라 두뇌에도 힘든 걸까요?

그거, 안 하면 안되나?

그런 이유에선지 많은 사람들이 아예 SNS를 멀리합니다. 대부분 시간 소모와 Distraction이 너무 크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하지만 지식 산업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SNS에서 얻는 정보는 포기하기에 너무나 값진 경우가 많습니다. 연구자라면 주변 연구자들의 관심사 및 산업 동향등을 어느정도 인지하고 있어야 적절한(Relevant) 연구를 할 수 있을 테니까요. 굳이 연구자가 아닐지라도, SNS에서 얻는 정보는 뉴스에서 접하는 것보다 더 깊이있고 정제된 것이 많습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하는 뉴스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정보원으로부터의 선별을 거친 컨텐츠이니까요.

또한 정보의 생산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면, 블로그와 트위터를 중심으로 한 SNS는 '전문가'의 정의를 바꾸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신문 및 방송에 자주 등장하는 사람이 전문가였다면, 우리 시대의 전문가는 구글 검색에 해당 키워드를 쳤을 때 가장 먼저 나오거나 블로그 구독자(트위터 팔로워)가 가장 많은 사람이 아닐까요? 자신의 분야에서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 이를 널리 전파할 수 있는 능력이 전문가의 핵심 경쟁력을테니까요. 많은 파워블로거들이 책을 출판하고 강연을 다닐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전문가가 되고 싶다면 SNS는 이미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

SNS를 피할 수 없다면 효과적인 소비 방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저의 경우, 양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한번에 45분 정도의 시간을 정하고 그 기간 동안에 가능한 분량을 소화한 후, 나머지를 포기하거나, 나중을 위해 Instapaper등에 저장합니다. 피드 구독에 가급적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고, 한 시간 이상을 넘기지 않으려 합니다. 또한, 피드를 추가할 때마다 하나씩 제거한다는 원칙을 세워, 매일 소화하기 힘든 양이 쌓이는 일을 막으려고 합니다. 

종류의 다양함에서 오는 문제는 채널별로 다른 컨텐츠와 소비 패턴을 도입함으로써 해결하고 있습니다. 블로그는 주로 연구 등 Professional Communication을 위해 활용하고, 트위터는 트렌드 및 뉴스를 따라잡는데 사용합니다. 예컨데 기술 트렌드 관련 훌륭한 블로거도 많이 계시지만, 블로그 대신 그분들의 트위터 피드를 팔로우합니다. 또한, 구독하는 블로그의 종류가 다양하기에, 한번에 한 종류의 피드만을 읽으려고 노력합니다. (예컨데, 검색 관련 블로그들) 이렇게 하면 한번에 지나치게 많은 종류의 정보를 소화하는데서 얻는 피로를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수동적인 정보 습득 대신에 비판적이고 능동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블로그 포스팅에 답글을 남기고, 관심이 가는 트윗은 리트윗합니다. 소통도 소통이지만, 이렇게 하면 주어진 정보의 옥석을 가리고,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과 같은 정보 홍수의 시대에 어찌보면 가장 중요한 능력이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SNS를 통한 배움이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식으로 기록을 남기면 지식 축적에도 도움이 됩니다. 

자동화된 솔루션은 없을까?

위에서는 사용자의 소비 습관에 촛점을 둔 해결책을 언급했지만, SNS는 자동화된 검색 및 필터링 기술을 가장 필요로 하는 분야가 아닐까요. 특히 개인적인 메시지와 퍼블릭한 트윗이 공존하는 트위터를 쓰다보면, 사용자에 따른 트윗의 중요도를 구분해서 보여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최근에 Gmail의 Priority Inbox를 사용하면서, '어떻게 이런 기능이 없는 이메일을 쓸까?' 생각했었는데, 이메일보다 훨씬 메시지의 양도 많고 (이와함께) 노이즈도 많은 SNS에서 훨씬 필요한 기능이 아닐까 합니다. 

이상적인 형태의 솔루션은 모든 채널에서 수집되는 정보를 모아 토픽별로 자동 분류하고, 노이즈 및 중복에 해당하는 부분을 제거한 후 사용자가 관심을 가질만한 순서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마치 정보 수집 및 분류에 능통한 똑똑한 비서가 한명 있는것 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일단 읽은 내용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향후에 관련 글이 다시 들어오면 remind시켜준다면 지식의 축적이라는 측면에서 도움이 되겠군요. 이런 서비스가 있다면 사용자의 취향에 대해서도 잘 알테니, 새로운 정보원을 발굴해서 보여줄 수도 있겠군요. 

최근 논문을 살펴보니, 각 서비스 유형 별로 (포럼 / 트위터 / 블로그) 컨텐츠를 필터링하는 테크닉에 대해서는 연구가 되어 있지만, 한 사용자의 소셜 미디어를 통합 관리하는 주제를 다룬 연구는 아직 없군요. 개별 미디어의 필터링은 Collaborative Filtering이라는 분야에서 다루지만, 이렇게 개별 사용자 중심에서 정보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은 저의 주 관심사인 개인 정보 관리(Personal Information Management)라는 분야의 연구주제입니다. 

제 예전 논문에서는 데스크톱 검색을 다루었지만, 개인 정보 관리의 무게추가 인터넷(cloud)으로 옮겨간 요즈음, 연구 측면에서도 더 관심이 가는 주제입니다. 사실은, 위에서 언급한 SNS 기반 지식관리와 관련된 프로젝트가 지난번 글에 언급한 Rails 개발입니다. 조만간 이 프로젝트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써볼 생각입니다. 

여러분은 소셜 미디어의 홍수를 어떻게 해결하고 계신가요? 혹시 유용한 툴을 아시나요? 

관련글


노트북에 킨들, 최근에 아이패드까지 보급되면서 종이를 포기한 (go paperless) 분들이 점점 늘어나는 듯 합니다. 종이는 부피를 많이 차지하고, 출력이나 보관이 번거로우며, 결정적으로 검색도 되지 않으니 Scalability가 많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종이를 포기하기에는 아직도 그 매력이 만만치 않습니다. 제가 말하고픈 매력은 편안한 소파에 앉아 책장을 한장씩 넘기면서 느끼는 종류의 센티맨털한 것이 아니라, 연구자로서 창조 활동을 도와주는 실용적인 가치입니다.


가용성 (anytime, anyplace)

창조 활동의 특징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샤워하는 도중 위대한 발견의 씨앗이 되는 영감을 얻었다는 이야기는 아르키메데스가 아니라도 많이 듣습니다. 저의 경우, 비행기에서 굉장히 창의적인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스쳐가는 아이디어를 포착하는데는 아직 종이만한 것이 없습니다. 전자 기기의 특성상 배터리 시간, 인터넷 연결 여부 등에 따라 사용이 불가능한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절대 시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가진 기기가 작동하지 않을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두뇌의 창의적 의욕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유연성 (freedom of expression)

가용성의 문제는 최근 기술의 발전으로 많이 해결된 것 같습니다. 10시간 사용 가능한 노트북이나 타블렛은 더이상 드문 이야기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정보기기에 비해 종이가 아직도 갖는 더 큰 장점은 유연성(표현의 자유)일 것입니다. 무제약의 저장공간(종이)에 자유로운 입력장치(펜)로 표현가능한 모든 것을 담을 수 있으니까요.

연구를 위한 아이디어를 종이에 스케치하는 장면을 상상해봅시다. 먼저 문제의 핵심적인 조건과 금방 떠오르는 해법을 몇가지 적어봅니다. 그러다 전체를 아우르는 큰 그림이 떠오르면 다이어그램을 그립니다. 마음에 드는 그림이 나올때까지 지우개로 지워가며 몇번이나 수정을 거듭힙니다. 이제 완성된 큰 그림을 염두에 두고, 세세한 알고리즘을 묘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알고리즘의 수행시간을 어림잡아 계산(back-of-the-envelope calculation)해 보고, 수행 일정까지 구상합니다. 마침내 그럴듯한 연구 계획이 나왔습니다!

물론 가상의(contrived) 사례이기는 하지만, 이를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하기 위해서는 오피스 패키지의 모든 기능을 총 동원해도 모자랄 것입니다. 이론상으로는 가능하겠지만,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이들간에 데이터를 옮기고 하는 사이에 창의적 활동에 필수적인 경쾌한 리듬을 유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만약 여러 디바이스를 사용한다면 작업의 복잡성은 더욱 커집니다. 여백에 써내려가기만 하면 되는 종이의 간편함과 대조되는 측면입니다.

자연스러움 (it just feels right)

기술이 더 발전하여 위에서 언급한 유연성의 문제를 거의 완벽하게 해결한 정보기기가 나왔다고 가정해봅시다. 과연 그때 저는 종이를 쉽게 버릴 수 있을까요? 아마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누구나 어릴때부터 종이를 사용하여 수많은 문제를 해결해왔고, 다양한 간접 경험(예: 종이에 뭔가 열심히 스케치하는 예술가를 담은 영상)을 통하여 '창조의 수단=종이'라는 공식이 어느 정도 두뇌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경우, 눈앞에 최신형 컴퓨터보다도 깨끗한 종이와 잘 깎인 연필이 있을 때, 창조적 두뇌가 훨씬 활발하게 움직이는 듯 합니다. 이것은 설명할 수도 없는 단지 '느낌'일 뿐이지만, 창조라는 미묘한 작업에 있어서 '느낌'의 차이는 결정적일 수도 있습니다. 많은 작가들이 특정한 작업 공간이나 필기구를 고집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정보기기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이런 느낌까지 흉내내기는 쉽지 않은 일 같습니다.

마치며

연구자로서 저의 목표중 하나가 '인간의 지적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정보기기를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마음 편하게 쓸 수 있는 글은 아닙니다 ;) 하지만, 개인용 컴퓨터가 대중화된지 30년이 넘어서도 '창의성'이라는 측면에서 아직도 종이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좌절하기보다는, 종이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떠올려 보려고 합니다.

항상 사용가능하며, 표현의 무한 자유를 보장하며, 종이의 촉감 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정보기기, 꿈이라도 구체적으로 꾸어보면 언젠가는 현실이 될 수 있겠죠? 애플의 디자인 철학과 관련된 예전 포스팅에서 발견한 인용구로 이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For us, it is all about refining and refining until it seems like there's nothing between the user and the content they are interacting with."
-Jonathan Ive, Chief Designer in Apple Corporation
어제 우리나라가 그리스를 상대로 통쾌한 승리를 거두었죠? 이럴 때는 특히 서울광장에서 얼싸안고 소리지르고 있을 친구들이 부럽지만, 고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기만하니 스포츠의 힘이 참 대단합니다. 며칠 전 스포츠가 줄 수 있는 교훈을 실감한 일이 있어 소개합니다. 

보도를 통해 많이들 아시겠지만, 최근 미국에서 메이저리그를 떠들썩하게 했던 일이 있습니다. 퍼팩트 게임을 기록하던 디트로이트의 투수 존 갈라라가(John Galarraga)가  9회 2사후에 마지막 타자를 상대로 잡아낸 내야땅볼 아웃을 1루심 짐 조이스(Jim Joyce)가 안타로 판정하여 기록을 놓치게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모두들 명백한 오심을 범한 심판을 질책하고 기록을 놓친 투수를 위로했었는데요, 훈훈한 뒷이야기가 소개되면서 여론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 뒷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우선 존은 오심 직후 그 당사자인 1루심을 향해 미소를 보이고 (속은 탓겠지만)  다음 타자를 침착하게 처리하여 경기를 마무리지었습니다. 경기 직후 비디오 판독으로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1루심 짐은 곧바로 존에게 다가가 눈물을 글썽이며 진심어린 사과를 하였고, 존은 그에게 "사람이면 누구나 실수를 하는 법"이라며 오히려 위로의 말을 건넸답니다. 다음날 존은 경기 시작전 행사에서 아직도 죄책감에 빠져있는 짐의 손을 잡으며 공개적인 용서의 뜻을 전했습니다. 

이런 사실이 나중에 보도되고, 평생의 위업이 될 수도 있었던 기록을 다른 사람의 실수로 날렸음에도 따뜻한 관용을 보여준 투수와, 자신의 잘못을 바로 인정하고 사과한 심판 모두에게 역사에 남은 품위있는(classy / noble) 행동이라는 찬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결국 투수는 기록상의 '퍼팩트 게임'을 잃었지만, 그 이후의 행동으로 그보다 훨씬 값진 영예를 얻은 것입니다. (존은 이 영웅적인 행동으로 주간 MVP에 선정되기도 합니다.)

흔히 스포츠의 목표를 더 나은 기록을 세우고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스포츠의 더 큰 목표는 '인간으로부터 최선의 모습을 끌어내는 것'에 있지 않을까요. 이런 모습은 대부분 한계를 뛰어넘는 기록이나 경기력이라는 형태로 발현되지만, 때로는 존과 짐의 경우에서처럼 실수를 인정하고, 상대방의 과오를 덮어주는 차원높은 인간미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인지, 오심 논란에도 불구하고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는 야구의 전통에 위배되는 비디오 판독 등의 기술적인 해결책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야구계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올 시즌에 스트라이크 존이 갑자기 넓어져 오심 논란이 자주 벌어지고, 이것이 불씨가 되어 그라운드에서의 퇴장 사태가 폭증했다고 합니다. '경기시간 단축'이라는 그다지 설득력없는 이유로 야구라는 스포츠의 핵심이 되는 규칙을 인위적으로 바꾼 KBO측, 그리고 팬들 앞에서 서로 욕설과 삿대질을 하는 선수단 및 심판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씁쓸한 기분이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 대표팀이 미국과 대등한 경기를 펼치기는 했지만,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아직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키피디아는 스포츠맨쉽(sportsmanship)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Sportsmanship expresses an aspiration or ethos that the activity will be enjoyed for its own sake, with proper consideration for fairness, ethics, respect, and a sense of fellowship with one's competitors. Being a "good sport" involves being a "good winner" as well as being a "good loser".


위 정의는 '스포츠'라는 행위의 본질이 '그 자체로서 즐기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우리 축구 대표팀 선수들이 인터뷰에 '반드시 이기겠다' 보다는 '경기를 즐기겠다'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변화입니다. 이번 월드컵에서의 좋은 성적은 이러한 태도 변화에도 원인이 있지 않을까요?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Essay : 2010. 3. 6. 12:15   By LiFiDeA
그야말로 all-out effort를 쏟아넣은 한주를 보낸 금요일 밤, 갑자기 든 생각입니다. 성실한 민족성으로 유명한 우리나라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자세는 굉장한 미덕처럼 되어 있지만, 과연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항상 바람직한 일일까요?

1. 냉정함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을 그 일과 동화(identify)시킨다는 일입니다. 그러다 보면 냉정함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많은 일은 열정 만큼이나 냉정함을 필요로 합니다. 따라서, 최선을 다하려다가 오히려 일을 그르치는 수가 있습니다. 

2. 큰 그림을 놓치게 된다.

몰입도가 높을수록 한발짝 떨어져서 전체를 조망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다보면 일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많고, 그 사실을 깨닫기도 어려워집니다. 몇시간 열심히 코딩한 것을 설계상의 실수로 다 날리게 되었을 때의 느낌, 아시나요?

3. 초반에 지쳐 쓰러지게 된다.

가치있는 일일수록 시간이 걸리고 불확실성이 큽니다. 살다보면 100만큼의 노력으로 된다고 생각했던 일에 두세배의 노력이 드는 경우도많습니다. 처음부터 최선을 다하다보면 계속 그만큼의 에너지를 쏟을수도 없을 것이고, 중반쯤 되서 포기하고 싶어집니다. 그러다보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겠죠.

4. 삶의 균형을 잃기 쉽다.

갈수록 개인이 담당해야 할 Role이 많아지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일에 몰입하다보면 다른 일에 정신을 쏟기는 그만큼 어려워집니다. 최선을 다한 일이 잘못된 경우, 그만큼 상처도 큽니다. 한가지만 잘못되어도 모두 망가지는 것이 삶이니, 이 역시 최선을 다하는 데에 따른 부작용이 아닐까 합니다. 

5. 스스로에게 뭔가를 강요하게 된다.

별로 끌리지 않는 일인데도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에 열심히 할 때가 있습니다. 영어에서는 그런 종류의 성실함을 drive라고 칭하고 마음에서 우러난 열정을 passion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강요된 성실함은 오래 가지도 않을 뿐더러 열정의 싹을 잘라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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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적어놓고 나니 말끝마다 'cool'을 입에 달고사는 미국 사람들이 갑자기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열정이 배제된 삶은 마치 흑백 영상처럼 무미건조하겠지만, 열정이라는 불꽃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큰 상처를 입게 될 테니까요. 매사에 최선을 다하기도 쉬운 일이 아닌데, 그렇게 해도 이렇게 함정이 많으니 노래 가사처럼 삶은 참 만만치 않군요. 하지만, 적어도 로봇이 이런 복잡미묘한 판단을 내린다는 것은 당분간 불가능할테니, 아직 인간의 존재 자체를 위협받을 일은 없다는 사실에 안도해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