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길에 오릅니다.
연구실 일을 대강 마치고, 고마운 분들께 인사를 드린 후에 보스턴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유학 결심후 1년 반, 이제 드디어 원하는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는 생각, 전혀 다른 환경에 내던져진다는 생각 등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심경이었습니다. 한참 꿈에 부풀다가도 앞으로의 일은 참 막막했습니다.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지?'
이렇게 되뇌이기를 몇 번, 하지만 돌아가는 다리를 불사른 지금은 두려움과 불안함보다 빨리 전진하는 것 이외에는 별 수 없습니다. 삶의 새로운 장을 열었으니, 더 나은 역사를 써야 합니다. 새 출발에 대한 각오를 적어봅니다.
- 껍데기보다 알맹이 : '유학 준비기'에서 밝혔지만, 저는 배우고 찾아내는 즐거움을 느끼고, 이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자는 생각에서 여기 왔습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출발하지 않은 유학생은 별로 없겠지만, 수많은 시련과 좌절에 봉착해서도 초심을 간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눈에 보이는 논문 수나 학위에 집착하기보다 항상 처음의 순수한 마음에 비추어 부끄럽지 않은 길을 가려 합니다.
- 넓이보다 깊이
: 그동안 저를 괴롭혀 왔던 것중 하나는 '어떤 일에도 충분한 관심을 쏟을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에 손을 댔다'는 것입니다. 일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이런 경향은 정서적인 불안과 함께 제가 한 인간으로서의 깊이를 갖는 데에 장애가 되어 왔습니다.
예전에 'The ability to focus is directly proportionate to the ability to unfocus.' 라는 말을 읽었는데, 집중력의 총량이 제한되어 있지는 않겠으나, 머리속에 적은 수의 일만 남기는 것이 집중력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한 전제조건임은 분명합니다. 이렇게 관심을 분산시키다 보면 어떤 일에서도 최고 수준의 결과물을 내기는 어려우며, 스스로의 능력도 기껏해야 제자리에 머물게 됩니다.
기계화 및 정보화로 대량 생산이나 복제가 용이한 환경에서, '그저 그런 결과물'은 거의 가치를 갖지 못합니다. 유학생으로서 일이든 인간관계든 그 폭은 제한되기 마련입니다. 신중하게 고른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 객관적 가치보다 주관적 가치
: 함께 사는 세상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는 필수적이나, 자신보다 다른 사람의 가치에 맞추려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한국에서도 저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 스스로에게 더 맞는 길을 찾으려 애썼지만,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무언가 만들어내는 것을 업으로 삼는 연구자로서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능력은 이미 선택사항이 아니기에, 모든 일에 있어 순응과 수용보다는 정말 '나 다운 것', '내게 어울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항상 생각하려 합니다.
스스로의, 그리고 고마운 분들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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