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길에 오릅니다.

유학생활 : 2007. 8. 26. 22:13   By LiFiDeA

연구실 일을 대강 마치고, 고마운 분들께 인사를 드린 후에 보스턴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유학 결심후 1년 반, 이제 드디어 원하는 공부를 시작하게 된다는 생각, 전혀 다른 환경에 내던져진다는 생각 등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심경이었습니다. 한참 꿈에 부풀다가도 앞으로의 일은 참 막막했습니다.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지?'

이렇게 되뇌이기를 몇 번, 하지만 돌아가는 다리를 불사른 지금은 두려움과 불안함보다 빨리 전진하는 것 이외에는 별 수 없습니다. 삶의 새로운 장을 열었으니, 더 나은 역사를 써야 합니다. 새 출발에 대한 각오를 적어봅니다.


  • 껍데기보다 알맹이 : '유학 준비기'에서 밝혔지만, 저는 배우고 찾아내는 즐거움을 느끼고, 이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자는 생각에서 여기 왔습니다. 이런 생각을 갖고 출발하지 않은 유학생은 별로 없겠지만, 수많은 시련과 좌절에 봉착해서도 초심을 간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눈에 보이는 논문 수나 학위에 집착하기보다 항상 처음의 순수한 마음에 비추어 부끄럽지 않은 길을 가려 합니다.
  • 넓이보다 깊이 : 그동안 저를 괴롭혀 왔던 것중 하나는 '어떤 일에도 충분한 관심을 쏟을 수 없을 만큼 많은 것에 손을 댔다'는 것입니다. 일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이런 경향은 정서적인 불안과 함께 제가 한 인간으로서의 깊이를 갖는 데에 장애가 되어 왔습니다.
    예전에 'The ability to focus is directly proportionate to the ability to unfocus.' 라는 말을 읽었는데, 집중력의 총량이 제한되어 있지는 않겠으나, 머리속에 적은 수의 일만 남기는 것이 집중력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한 전제조건임은 분명합니다. 이렇게 관심을 분산시키다 보면 어떤 일에서도 최고 수준의 결과물을 내기는 어려우며, 스스로의 능력도 기껏해야 제자리에 머물게 됩니다.
    기계화 및 정보화로 대량 생산이나 복제가 용이한 환경에서, '그저 그런 결과물'은 거의 가치를 갖지 못합니다. 유학생으로서 일이든 인간관계든 그 폭은 제한되기 마련입니다. 신중하게 고른 일에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 객관적 가치보다 주관적 가치 : 함께 사는 세상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는 필수적이나, 자신보다 다른 사람의 가치에 맞추려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한국에서도 저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 스스로에게 더 맞는 길을 찾으려 애썼지만, 쉽지 않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무언가 만들어내는 것을 업으로 삼는 연구자로서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능력은 이미 선택사항이 아니기에, 모든 일에 있어 순응과 수용보다는 정말 '나 다운 것', '내게 어울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항상 생각하려 합니다.
환 경이 인간을 만든다고 하지만, 주어진 환경에 스스로의 방식으로 적응하고, 최대한의 가치를 끌어내는 일은 가장 창조적인 작업입니다. 환경과 갈등을 빛거나, 반대로 이에 동화되어 자기 색깔을 잃는 것은 둘다 답이 아닐 겁니다. 미국이 제공하는 '기회'는 순간순간 깨어 있는 자에게만 포착되는 것임을 믿습니다.

스스로의, 그리고 고마운 분들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으려고 합니다.

유학 준비에 대한 자료를 찾다 눈에띄는 제목의 책을 발견했습니다. '강릉대 아이들 미국 명문대학원을 정복하다.' 강릉대 전자공학과에 91년 설립과 동시에 부임한 조명석 교수님이, 15년에 걸친 노력끝에 어떻게 97년부터 총 31명을 미국 대학원에 진학시켰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대학원 입학허가를 받는데 어느 학부를 졸업했느냐는 중요하지 않다'는 제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 읽기 시작한 책이었으나, 읽은 후에는 부모님도 포기했다는 아이들을 자신감과 실력을 겸비한 인재로 키워낸 조명석 교수님을 비롯한 강릉대 전자과 교수님들의 순수한 열정과 끈기에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조명석 교수님은 책에서 처음에 국내 대학원과 기업에서도 받아주지 않는 학생들에게 '할수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 역으로 해외대학원에 도전할 생각을 하셨다고 합니다. 97년 첫 제자가 University of Washington에 진학하자 이를 시스템으로 정착시켜 유학을 준비하는 제자들에게 여름방학때 하루 12시간씩 집중 훈련을 시켜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게 하고, 유학간 선배들의 사진이 붙은 도서관을 운영하고 학사관리를 엄정하게 하여 탄탄한 전공 실력을 쌓을수 있도록 지도하셨다고 합니다.

뜻있는 개인의 지속적인 노력이 얼마나 주변 및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지를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학생을 지도하는 마음가짐에대해 조명석 교수님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어린아이는 눈빛만으로 부모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안다.
하물며 대학생이 교수가 자신을 존중하는지 무시하는지를 모르겠는가?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조 교수님의 지도를 받은 강릉대 전자과 학생들은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다른 대학 출신과 전공실력을 겨룰 때 내가 대학시절에 정말 탄탄하게 실력을 기르고 왔다는 것을 피부로 느껴요.

국립 강릉대, 그것도 전자공학과 진학이 생애 최고의 행운이었습니다.
서울대 전자과 졸업예정자로서 스스로의 대학생활을 돌이켜보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과연 대학생활 및 출신학교에 대해 이정도 자신감을 가졌던가요?

기회가 될때마다 후배들에게 학교이름만 믿고 나태하게 지내면 큰코다칠것이라고 경고해왔으나, 학벌사회의 붕괴가 머지않았음을 다시 실감합니다. 해외유학이라는 'Second Chance'의 가능성이 충분히 확인된 만큼 앞으로 실력있는 '비명문대' 학생들의 유학은 추세가 될 것이라고 예측됩니다. 장기적으로는 유학생 수의 증가에 따라 유학 자체가 주는 프리미엄은 깎이게 되겠군요. 자격보다 실력이 우선시되는 시대의 도래를 기대하며, 마지막으로 책에 인용된 로맹 롤랑의 명언을 옮깁니다.

운명은 일시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의 경험과 시련, 알려지지 않은 노력의 기초위에 쌓이는 것이다.
그렇게 결정된 운명은 견고해서 흔들림이 없다. 왜나하면 자신이 스스로 노력해서 일궈낸 성과들은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 로맹 롤랑
책에는 유학에 대한 현장감있는 조언이 가득한 만큼, 대학원 유학을 준비하시는 분들께 일독을 권합니다. 이와함께 제가 LifArt.com에 연재중인 유학 준비 가이드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참고자료

'강릉대 아이들' 관련기사
Jerry's 미국 대학원 유학 준비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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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월, 유학을 처음 결심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3년간의 회사생활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올 무렵, 원하는 일을 평생 하기위한 출발점으로 대학원 공부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몰랐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는 더더욱 막막했습니다. 단지, 적성과 관계없이 되는대로 골라잡은 직장을 다니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제대로 된 일을 하기에는 스스로 너무 부족하다는 점은 분명했습니다.

막연히 유학을 결심했던 것은 유학 준비가 가장 방대하고 어렵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전공 결정, 영어 시험, 추천서, 자기소개서, 관련 장학금 지원까지 해야할 일이 끝도 없었지만 설령 진학에 실패하더라도 평생 도움이 될만한 일들이라고 느꼈습니다. 사실, 평생 연구하고픈 분야를 찾아 계획서를 써보고, 이에 관련하여 전문가들을 만나뵙고 자신의 소신을 펼 기회를 갖는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하고픈 일을 찾아 죽기살기로 매달리는 경험없이 어찌 후회없는 젊은날을 추억하겠습니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UMass Amherst

그렇게 시작된 1년간의 도전은 결국 결실을 맺었습니다. University of Massachusetts, Amherst (UMass) Computer Science Department로 진학합니다. 석/박사 통합 과정이고 학비 전액, 의료혜택, 초기 생활비까지 포함된 재정 지원을 약속받았습니다. Computer Science 전체 랭킹은 20위 정도이지만 대가급 연구자인 Bruce Croft, Andrew McCallum을 필두로 정보 검색(Information Retrieval & Text Mining) 분야의 탑스쿨이며,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 Machine Learning) 분야에서 전미 랭킹 5~10위에 해당하는 학교입니다. 앰허스트는 메사추세츠주의 소도시로, 뉴욕과 보스턴중간쯤에 위치해 있습니다.


시작과 끝만 언급했으나, 과정 역시 가시밭길이었습니다. 사실상의 유학 지원 하한선(3.5)을 간신히 상회하는 학점에, 추천서를 부탁드릴 교수님도 마땅치 않았으며 전공까지 전기에서 컴퓨터로 바꾸는 것이라 주변의 많은 우려가 있었습니다. 본격적인 준비도 2월부터 시작했기에 시간도 부족했습니다. 토플 시험은 늦게 등록한 탓에 결국 중간고사와 같은 날 쳐야 했습니다. 추천서를 염두에 두고 야심차게 시작한 졸업 프로젝트의 결과는 간신이 '졸업'이나 할 정도였으며, 장학재단 심사에서도 고배를 마셨습니다.

여기서 접어야되나, 그저 안정적이고 돈 많이주는 회사 입사준비나 해야하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처음 유학 결심을 말씀드렸을 때 만류하시다가 나중에 잘 해보라고 격려해주시고, 나이 쉬흔에 다 큰 자식 뒷바라지를 위해 다시 힘든 일을 시작하신 어머니께 포기하겠다는 말은 꺼낼 수도 없었습니다. 자기소개서와 40장 분량의 연구계획서를 가지고 프리젠테이션을 했을때 초면에 선뜻 지원을 허락해주신 교수님들의 기대도 져버릴 수 없었습니다. 다 쏟아넣은 뒤에 안되더라도, 필생의 각오로 시작한 일은 어떤 식으로든 끝을 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차여차해서 원서를 넣고 Information School, 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인터뷰 초청까지 받아 꿈에 그리던 첫 미국 방문을 하게 되었으나, 10명 미만이 선발되는 Ph.D 프로그램의 1차 합격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아 기약없는 기다림만 남았었습니다. UMass에서도 바로 합격하지는 못하여 며칠 전 연락을 받기 전까지 가슴을 졸여야 했습니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할걸하는 후회와, 시간을 갖고 한번 더 준비해보자는 결심이 교차하던 찰나에 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천근의 책임감이 느껴졌습니다. 하고싶은 일을 최상의 환경에서 해볼 기회가 주어질 때, 그만큼의 결과가 기대되는 것입니다. 학부생으로서 연구 실적도 없이 추천서를 부탁드리고 잠재력을 믿어달라며 박사과정에 지원했을 때, 그 잠재력을 보여야 할 의무도 지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인이 몇년에 한명꼴로 들어오는 프로그램에서 연구할 때, 나라 전체의 명예가 어깨에 걸린 것입니다.

대학원 입학 허가가 바꾸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것도, 좋은 논문 주제가 쏟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말하자면 자신이 원하던 경기에 출전하게 되는 것 뿐입니다. 아주 길고 험하며 끝이 보이지도 않는, 하지만 여정 자체에 배움과 창조의 희열이 있는 경기 말입니다.

힘들게 출전하게된 경기, 나가서 비실거리면 곱절로 혼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도와주신 많은 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열과 성을 다해 정진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Steve Jobs의 말을 인용합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P.S. 제가 준비과정에서 겪었던 시행착오가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유학 준비의 전과정을 이곳에 정리하여 올릴 계획입니다. 유학이 모든 사람에게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준비하시는 분들께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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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ry's 유학 준비 가이드' 연재

유학생활 : 2007. 3. 30. 22:51   By LiFiDeA

지난 1년간 컴퓨터/정보학 전공으로 미국 박사과정 유학을 준비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유학을 준비하며 자료 역시 많지만 대부분 정리된 형태는 아닙니다. 지난 1년간 느낀 점은 제대로된 가이드가 없는 유학 준비는 정말 많은 시행착오를 수반한다는 점입니다. 준비 과정에서 시중의 자료는 대부분 섭렵했고, 거기에 제 경험을 더했기에 충분히 가치있는 컨텐츠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준비과정내내 뭔가 다른 방법을 시도해보려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제 모토가 '줄 설 필요없는 인생'인점도 있지만,학점이 아주 좋은 것도 논문이 있었던것도 아니었기에 다른 지원자와 뭔가 다르게 하지 않으면 도저히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이제 결과를 맺었으니,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제가 시도한 방법을 공개합니다.

계획하고 있는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개요
  2. 유학, 내게 맞는 길인가?
  3. 학교 및 프로그램 알아보기
  4. 시험 준비
    1. 영어 공부
    2. GRE 준비
  5. 에세이 작성
  6. 추천서 받기
  7. 원서 작성
  8. 지원 결과에 따라
    1. 1년 더 할것인가?
    2. 진학 학교 선정하기
  9. 출국 전 준비

연재에 앞서 앞으로 올라갈 내용의 개요(Draft V3)를 먼저 올립니다.
(최종 수정 : 3/31,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