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월, 유학을 처음 결심하던 때가 생각납니다. 3년간의 회사생활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올 무렵, 원하는 일을 평생 하기위한 출발점으로 대학원 공부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몰랐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는 더더욱 막막했습니다. 단지, 적성과 관계없이 되는대로 골라잡은 직장을 다니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제대로 된 일을 하기에는 스스로 너무 부족하다는 점은 분명했습니다.

막연히 유학을 결심했던 것은 유학 준비가 가장 방대하고 어렵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전공 결정, 영어 시험, 추천서, 자기소개서, 관련 장학금 지원까지 해야할 일이 끝도 없었지만 설령 진학에 실패하더라도 평생 도움이 될만한 일들이라고 느꼈습니다. 사실, 평생 연구하고픈 분야를 찾아 계획서를 써보고, 이에 관련하여 전문가들을 만나뵙고 자신의 소신을 펼 기회를 갖는 사람이 몇이나 됩니까. 하고픈 일을 찾아 죽기살기로 매달리는 경험없이 어찌 후회없는 젊은날을 추억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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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Mass Amherst

그렇게 시작된 1년간의 도전은 결국 결실을 맺었습니다. University of Massachusetts, Amherst (UMass) Computer Science Department로 진학합니다. 석/박사 통합 과정이고 학비 전액, 의료혜택, 초기 생활비까지 포함된 재정 지원을 약속받았습니다. Computer Science 전체 랭킹은 20위 정도이지만 대가급 연구자인 Bruce Croft, Andrew McCallum을 필두로 정보 검색(Information Retrieval & Text Mining) 분야의 탑스쿨이며,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 Machine Learning) 분야에서 전미 랭킹 5~10위에 해당하는 학교입니다. 앰허스트는 메사추세츠주의 소도시로, 뉴욕과 보스턴중간쯤에 위치해 있습니다.


시작과 끝만 언급했으나, 과정 역시 가시밭길이었습니다. 사실상의 유학 지원 하한선(3.5)을 간신히 상회하는 학점에, 추천서를 부탁드릴 교수님도 마땅치 않았으며 전공까지 전기에서 컴퓨터로 바꾸는 것이라 주변의 많은 우려가 있었습니다. 본격적인 준비도 2월부터 시작했기에 시간도 부족했습니다. 토플 시험은 늦게 등록한 탓에 결국 중간고사와 같은 날 쳐야 했습니다. 추천서를 염두에 두고 야심차게 시작한 졸업 프로젝트의 결과는 간신이 '졸업'이나 할 정도였으며, 장학재단 심사에서도 고배를 마셨습니다.

여기서 접어야되나, 그저 안정적이고 돈 많이주는 회사 입사준비나 해야하나 싶었습니다. 하지만, 처음 유학 결심을 말씀드렸을 때 만류하시다가 나중에 잘 해보라고 격려해주시고, 나이 쉬흔에 다 큰 자식 뒷바라지를 위해 다시 힘든 일을 시작하신 어머니께 포기하겠다는 말은 꺼낼 수도 없었습니다. 자기소개서와 40장 분량의 연구계획서를 가지고 프리젠테이션을 했을때 초면에 선뜻 지원을 허락해주신 교수님들의 기대도 져버릴 수 없었습니다. 다 쏟아넣은 뒤에 안되더라도, 필생의 각오로 시작한 일은 어떤 식으로든 끝을 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차여차해서 원서를 넣고 Information School, 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인터뷰 초청까지 받아 꿈에 그리던 첫 미국 방문을 하게 되었으나, 10명 미만이 선발되는 Ph.D 프로그램의 1차 합격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아 기약없는 기다림만 남았었습니다. UMass에서도 바로 합격하지는 못하여 며칠 전 연락을 받기 전까지 가슴을 졸여야 했습니다. 조금만 더 열심히 할걸하는 후회와, 시간을 갖고 한번 더 준비해보자는 결심이 교차하던 찰나에 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천근의 책임감이 느껴졌습니다. 하고싶은 일을 최상의 환경에서 해볼 기회가 주어질 때, 그만큼의 결과가 기대되는 것입니다. 학부생으로서 연구 실적도 없이 추천서를 부탁드리고 잠재력을 믿어달라며 박사과정에 지원했을 때, 그 잠재력을 보여야 할 의무도 지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인이 몇년에 한명꼴로 들어오는 프로그램에서 연구할 때, 나라 전체의 명예가 어깨에 걸린 것입니다.

대학원 입학 허가가 바꾸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것도, 좋은 논문 주제가 쏟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말하자면 자신이 원하던 경기에 출전하게 되는 것 뿐입니다. 아주 길고 험하며 끝이 보이지도 않는, 하지만 여정 자체에 배움과 창조의 희열이 있는 경기 말입니다.

힘들게 출전하게된 경기, 나가서 비실거리면 곱절로 혼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도와주신 많은 분들,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열과 성을 다해 정진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Steve Jobs의 말을 인용합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P.S. 제가 준비과정에서 겪었던 시행착오가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에 유학 준비의 전과정을 이곳에 정리하여 올릴 계획입니다. 유학이 모든 사람에게 옳은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준비하시는 분들께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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