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 지켜가기
7병역특례를 마치고 복학할 무렵 결심한 것이 있었으니, 좋아하는 일을 평생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이 끌리는 일은 놀랄만한 집중력으로 해내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보다는 눈에 보이는 조건을 위주로 평생의 업을 택한다는 현실을 목격한 후였습니다.
고민 끝에 평소의 관심사와 그동안의 경험,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을 고루 만족시키는 길을 발견할 수 있었고, 이를 좆아 미국에까지 왔습니다. 제가 발견한 것은 정보 욕구(Information Needs)를 만족시키고 나아가 인간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기반 기술 및 정보 시스템의 개발이었습니다. 그동안 꿈꿔오던 일을 더이상 바랄나위 없는 환경에서 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은 흥분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시작하는 것 보다 지키기가 어렵다’고 했던가요… 쉽지 않게 시작한 유학 생활은 시작부터 녹록치 않습니다. 익숙하고 편안한 것과 멀어져 낯선 것에 몸을 맡기는 적응기가 끝나고, 이곳에서의 일상에 다시 적응하기 시작할 무렵, 문득 초심과 멀어져가는 자신을 발견하고 몸서리치게 됩니다.
궁금한 것을 스스로 찾아가며 하나씩 깨우쳐가는 배움의 즐거움은 내일로 치르는 시험에 대한 걱정으로, 군더더기없이 잘 설계된 코드가 동작하는 것을 보는 희열은 연구 프로젝트 결과에 대한 부담으로 대체되어 갑니다. 놀이라 부르던 것이 일이 되고, 그 일이 쌓여 부담이 되고,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해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회의라도 찾아올때면 정말 집에가고 싶어집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지 않는 것은 우아한 삶의 조건이다. – 시오노 나나미
예전에 책에서 이 구절을 읽고 강하게 부정하던 기억이 납니다. 좋아하는 일을 일을 하지 못한다면 성공해도 성공한게 아니라고 믿었던 저로서는 도저히 공감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지켜가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면 생각을 고쳐먹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녕 직업은 생계 수단으로, 그리고 인생의 의미는 그 밖에서 찾아야 하는 것인가요.
좀더 노력하려 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순진한 믿음을 버리지 않으려 합니다. 스스로 객관적인 성취보다는 내면의 만족을 중시하기에 가능하다고 봅니다. 단 이런 결과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뼈저리게 배우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도 ’일’입니다. 일은 자신,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약속입니다. 학자가 되는 일은 분명 취미로 책을 읽고 자료를 조사하는 것과 다른 결심을 필요로 합니다. 꾸준히 결과를 내고, 다른 사람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야 합니다.
하지만, 이에 우선하는 것이 내면의 불꽃을 지키고 활활 타오르게 하는 것입니다. 학과 세미나에서 어떤 교수님이 동기(motivation)야말로 가장 희소한 자원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공감했습니다. 대상에 대한 순전한 호기심, 진리 탐구에 대한 열의를 잃어버린 사람은 학문을 할 수 없습니다. 학문을 명예나 부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것도 이런 사람들의 책임일 겁니다.
조용히 앉아 마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하루를 보내고 싶은 오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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