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이 미국에 온지 4년째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올해 초에 졸업 논문 최종심사의 전 단계인 논문 Proposal을 마쳤으니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슬슬 생각해볼 시점입니다. 오늘은 그동안 대학원에서 배운 것들, 아직 배워야 할 것들,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써볼까 합니다. 최근에 제 글이 주로 그렇듯, 제 생각을 정리하기는 목적으로 쓰는 것이지만, 유학을 생각하시는 독자 분들께 참고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What I Got

지난 4년간의 대학원 생활을 통해 저는 무엇을 얻었을까요? 혼자 만들어 사용하던 개인정보관리 시스템 개발 경험과 '하고싶은 일을 하겠다'는 결심 이외에는 전무하던 4년전과 비해, 지금은 미숙하나마 자신을 '연구자'로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지식이나 기술이야 다른 경로로 배울 수도 있었겠지만, 연구자로서의 마음가짐을 체득하는 것은 대학원 생활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수확이 아닌가 합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대학원 입학 전에는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어떻게 시스템을 구현해서 써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면, 지금은 주어진 문제를 작은 단위로 쪼개고 각 부분에 맞는 어프로치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직관적에 따라 해결책을 찾았다면, 이제 관련 분야의 연구를 찾아보고 힌트를 얻으려고노력합니다. 시스템을 만들고 사용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방법론에 입각한 평가를 해야 한다는 것도 압니다. 

학교 생활, 학회 참석 및 두 번의 인턴 생활을 통해 배운 것도 많습니다.  검색과 관련된 기계학습 및 자연어처리, 통계학의 기초를 수업 및 여러 튜토리얼을 통해 다질 수 있었고, 학회에서 연구자들과 소통하며 '학계'라는 커뮤니티의 일부가 되는 보람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학교에서의 생활과 기업 연구소에서의 생활이 어떻게 다른지도 맛볼 수 있었습니다. 학교 생활만 했다면 얻지 못했을 이런 경험들이 졸업을 앞둔 이 시점에 진로를 결정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What I Need

대학원에서의 4년은 연구자로서의 경력을 시작할 수는 있어도 충분한 깊이를 달성하기에는 부족한 시간고, 이를 달성하는 것이 졸업 전까지의 목표가 될 것입니다. 우선, 이론적 기초, 문제 해결력,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 연구자로서의 기본 실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고 싶습니다. 물론 이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좋은 연구를 게속 하는 것이겠지만, 지난번에 썼듯이 비슷한 노력으로 틀에 박힌 연구를 하는 것으로는 자기 자신의 최대치를 끌어낼 수가 없을 것입니다. 매번 평가의 기준(Bar)을 높이고 기존의 유형을 답습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연구자로서의 스킬 향상 만큼이나 졸업 전에 해두고 싶은 부분은, 공부한 내용을 통합하여 체계적인 사고의 틀을 확립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수많은 논문과 책을 읽었지만, 읽은 내용이 모두 기억에 남는 것도 아니고, 이런 저런 계기로 접한 지식이 일관된 체계를 이루는지도 의문입니다. '박사 학위 소지자라면 자기 분야에서 책 한권은 쓸 수 있어야 하지 않나'하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는데, 굳이 출판물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배운 내용을 일관된 형태로 정리하는 작업은 유의미할 것입니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사항은 연구직의 지원 및 심사과정에서 중점적으로 평가하는 항목이기도 합니다. 교수직 인터뷰에 필수적인 과정인 Job Talk은 연구자로서의 경험과 자질에 대한 종합 평가에 다름아니고, 많은 회사에서의 인터뷰는 주어진 문제에 대한 접근법과 해결책을 묻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예컨데 '이러이러한 상황에서 검색 알고리즘을 어떻게 디자인하고 평가해야 하는가.'와 같은 인터뷰 질문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준비는 위에서 언급한 사고의 틀의 확립일 것입니다. 

What I Wish

흔히 졸업을 앞둔 컴퓨터 전공의 대학원생들은 학교 혹은 기업 연구소 사이에서 진로를 고민하게 됩니다. 학교에서는 학문적 자유와 정년이 보장되는 대신, 연구 프로젝트 수주 및 수업 등으로 순수 연구에 할애할 시간은 줄어든다고들 합니다. 기업에서는 연구에 집중할 수 있고 사용자 데이터를 제한없이 사용할 수 있지만, 지적 재산권 등의 문제로 인해 학계에서의 활동에는 아무래도 제약을 받게 마련입니다. 

 이처럼 다른 특성 때문에 학계와 업계 중 하나를 골라 준비하는 경우도 있지만, 박사 졸업자가 전공을 살려 취업할 수 있는 연구직 채용 규모는 많아야 수 명으로 제한적이기에 둘 다 준비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학교 혹은 기업에 맞춰 준비해야 할 부분도 있겠지만,  서류 / 추천서 / Job Talk / 면접 등으로 이루어지는 심사 과정이 워낙 복합적이기에, 요령 습득보다는 위에서 언급한대로 연구자로서 훌륭한 자질을 갖추는데 주력할 생각입니다. 

Epilogue

 미국이라는 낯선 땅에 스스로를 적응시키려 노력하던 때가 엇그제 같은데, 어느덧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평생의 직업이 결정되는 단계인만큼 긴장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재에도 스스로 즐거운 일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어떤 식으로도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별로 걱정할 일은 없어 보입니다. 열심히 읽고, 쓰고,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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