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과 연구자의 교차점에서 - 마이크로소프트에서의 인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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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 검색 엔진의 인덱스 크기를 어떻게 측정하겠습니까?
답변 : 검색 엔진에 질의를 던져 리턴되는 문서의 개수를 측정한다. 이때, 질의어로는 'the'와 같은 모든 글에 쓰이는 단어(stopword)가 좋다. 그 이유는 가장 많은 문서를 포함시킬 수 있으며, 특정 주제에 관한 글만 샘플링하는 것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통계에서 말하는 unbiased estimator가 되는 것이다.
질문 : 제한된(constant) 공간의 메모리를 가지고 임의의 배열을 랜덤하게 섞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답변 : 링크로 대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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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는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1) | 2009.03.03 |
한때 지금과 같은 형태의 컨퍼런스가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모든 분야의 최신 정보가 실시간으로 전파되며 그 수단 역시 텍스트 위주에서 비디오 등으로 다양화되는 요즈음, 왜 굳이 몇달 전부터 논문을 준비하여 심사를 받고, 막대한 비용을 들여가며 만나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조금만 더 합리적으로 생각한다면 번거로운 컨퍼런스 대신 발표 동영상을 올리고 실시간으로 comment를 받는 식으로 바뀌리라는 상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첫 컨퍼런스인 ECIR에 참석하고 나서야 이것이 얼마나 단견이었는지를 느꼈습니다. 컨퍼런스는 정보와 지식만큼이나 관계 형성과 감정의 교류를 위한 장이라는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공부는 인터넷으로도 할 수도 있지만, 지구 저편에서 온 연구자와 공감할 때 느껴지는 쾌감을 얻을 수는 없으니까요.
첫번째 가르침은 의외의 곳에서 찾아왔습니다. 도착한 첫날, 여정을 풀고 숙소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누군가 제 이름을 불러서 돌아보니 지도교수님께서 야외 테이블에서 맥주를 한잔 하고 계셨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자리에 앉아 한참 대화를 나누다가 “첫 컨퍼런스를 성공적으로 보내는 방법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드렸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잠시 생각하시더니 뜻밖에도 “최대한 사람들을 많이 만날 것, 그리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깊이있는 대화를 나눌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는 ’지식’보다 ’사람’을 강조하시는 점을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며칠이 지나서 그 뜻을 알 수 있었습니다.
둘째날 튜토리얼과 웍샵이 있었고 저는 Interactive IR Workshop과 Information Extraction Tutorial에 참석했습니다. 논문으로만 접하던 학자들의 발표도 발표였지만, 연구자들이 모인 자리인지라 즉석에서 생동감있는 토론이 벌어지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녁에는 참석자들과 근처의 Bar에 가서 한밤중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University of Glasgow를 비롯한 유럽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라, 미국의 대학원 생활 그리고 한국에 대해 많은 관심을 나타냈습니다. 첫 만남이었음에도 연구자라는 공통점 떄문인지 금방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날 지도교수님의 기조연설을 시작으로 본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Query Evolution이라는 주제의 연설은 지금까지 키워드 처리에 중점을 맞추어 개발된 검색엔진이 좀더 자연어에 가까운 길고 복잡한 질의어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요지의 발표였습니다. 이어진 논문 발표를 들으면서 많은 발표자들이 30분이라는 제한된 시간에 지나치게 많은 내용을 전달하려고 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저녁에 숙소에 돌아와서는 슬라이드의 불필요한 문장과 내용은 모두 빼고 최종 연습을 했습니다. Glasgow에서 온 친구들이 연습 발표를 지켜봐주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발표날, 수차례의 연습 덕인지 발표가 가까워질수록 마음이 편해지면서 자신이 생겨 실제 발표는 즐겁고 편안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발표 직후에 ‘단순하면서도 활용도가 높은 연구였다’, ‘알아듣기 쉬웠다’는 comment를 받으며 보람을 느꼈습니다. 특히, 검색학회의 원로이자 Microsoft Research Cambridge의 책임자인 Stephen Robertson경 등을 비롯하여 존경하는 연구자들이 많이 참석한 자리라 더욱 기뻤습니다.
발표를 마치고는 좀더 편한 마음으로 남은 일정에 임할 수 있었습니다. 그제서야 봄을 맞은 남프랑스의 아름다운 정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컨퍼런스를 마치고는 이틀 정도 파리에 머물며, 루브르 박물관, 퐁피두 센터, 피카소 박물관 그리고 몽마르트 언덕 등을 주마간산으로나마 돌아보았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웹 겔러리에 사진을 올렸습니다.
긴장도 많이 했고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ECIR 참석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될 것 같습니다. Amherst에서 고민하면서 작업할 때에는 보잘것없이 여겨지던 작업이지만, 이렇게 세계 각국의 학자들과 교감을 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합니다. “자신이 선택한 길을 최선을 다해 걸어갈 때, 그 길의 끝에서 세상을 만날 수 있다”는 구본형 선생님의 책 한구절이 떠오릅니다.
휴식의 기술 (1) | 2009.09.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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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는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1) | 2009.03.03 |
고3과 대학원 (2) | 2008.02.03 |
‘화가는 캔버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적은 문구입니다. 평생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순수한 예술혼을 불태웠던 그가 텅 빈 캔버스를 응시하며 중얼거리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요즘 들어 스스로 자주 되뇌이는 말이기도 합니다.
처음 유학을 결심했을 때, 항상 자기 분야의 최전방(state-of-the-art)에서 변화를 접하고 이에 나아가 미래를 열어가는 일에 한몫 거들 수 있다는 점이 연구자의 길을 선택하는 가장 큰 동기였습니다. 매일 새벽별을 보며 돌아오는 생활을 하더라도,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는 여정이라면 차라리 아름다울 것이라는 낭만에 젖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유학 생활을 시작한 지 1년 반이 지나고, 새로운 일과 생활에 대한 환상에서도 벗어난 요즘, 연구자라는 진로, 그리고 항상 무언가를 만들어는 직업에 종사한다는 것에 대해 종종 생각하게 됩니다.
우선 밝은 면을 생각해봅시다. 어린시절 찰흙이나 레고 블럭으로 무언가를 만들면서 시간가는 줄 몰랐던 것을 생각해보면 창조는 본질적으로 즐거운 일이 아닌가 합니다. 생산성 및 창의성에 대한 고찰이 돋보이는 책 Flow – the psychology of optimal experience에도 정상급의 학자나 예술가들은 창의적인 작업 도중 종종 무아지경에 빠진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문제는 어떤 일이든 그것이 생계의 수단이 되는 순간 여러가지 제약조건을 안게 된다는 점입니다. 우선 마음의 이끌림에 의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일반 대중)의 필요에 부합하는 대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습니다. 연구자라면 펀딩을 제공하는 주체나 논문을 심사하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습니다. 비슷한 문제로 연구 프로젝트의 규모가 커질수록 각 구성원이 역할이 줄어들며, 이에 비례하여 개인의 주인의식이 희박해진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이보다 심각한 문제는 아마도 직업으로서 지속적으로 생산물을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일 것입니다. 대학원생은 졸업을 위해, 회사 연구원 및 신임 교수는 직업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뭔가 만들어 써내고 발표해야 하기 떄문입니다. 가끔 언론에 성과에 대한 압박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연구원의 사례가 보고되며, 연구 성과 조작등의 비윤리적 사건의 배경에 이런 스트레스가 존재한다는 것을 상기해 봅시다.
하지만 이러한 부담감보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창작이 더이상 ’놀이’가 아니고 ’의무’가 되는 순간 무언가 만들어내기 위해 필수적인 정신적 자유를 찾기 어려워진다는 점입니다. 일단 마음이 구속을 받게되면, 생산성은 떨어지게 마련이며 이 점이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오는 악순환이 시작됩니다.
따라서 창작을 업으로 하는 사람에게는 일 자체에서 보상을 찾으며 성과에는 초연한 태도가 필요할 겁니다. 현직에서 왕성한 연구 활동을 벌이는 학자들이 대부분 검소한 생활을 하며, 자신의 분야 이외에는 무관심한 것도 그런 이유인지 모르겠습니다. 거꾸로 연구 활동에서 오는 정신적 보상이 다른 일에 굳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을 정도로 충분하다고 해석해도 될겁니다.
여기 와서 힘에 부칠때마다 예전에 소프트웨어 회사에 근무하며 주어진 스펙을 코드로 옮기는 것보다 좀더 창의적인 일을 꿈꾸던 자신을 떠올립니다. 그 꿈에 한발 다가선 지금, 창작에 대한 부담을 논하는 것은 사치라는 생각도 듭니다.
첫 컨퍼런스 - ECIR (유럽 정보검색학회) 후기 (0) | 2009.05.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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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에 진학하며 생각한 것 중 하나가 ‘고3때 처럼만’ 이었다. 부끄럽게도 스스로 가장 치열하게 살았다고 기억되는 때가 고3이였던 까닭이다. 아침 자율학습을 시작으로 야간 자율학습까지 마치고 그것도 모자라 도서관까지 갖다 집에 오던 날도, 공부가 잘 되던 날은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원하는 것을 분명히 알았고, 그것을 향해 한걸음씩 다가가고 있다고 확신했기 때문일까.
어른이 되어 원하는 전공(전자)을 선택했지만 생각만큼 몰입할 수 없었고, 전공 공부보다 인생 공부에 관심이 많았던 학부 생활을 거쳤다. 그 후 정말 이거다 싶은 분야를 찾아 시작한 대학원 생활을 고3의 각오로 시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대학원과 고3은 비슷한 점도 많다. 깨어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쏟아 넣어야 하고, 끊임없이 한계를 시험함으로써 스스로를 키워야 한다. 성과에 대한 엄밀하고 끊임없는 피드백(모의고사, 논문)이 주어진다는 점도 같다.
하지만 몇달이 지난 지금, 고3처럼 대학원 생활을 해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고3 생활을 겪어내며 생긴 사고방식과 습관이 대학원 공부를 하는 데 장애가 된다고까지 느껴진다. 고3과 대학원은 전혀 다른 게임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고3은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를 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잘 정리된 교과서와 참고서를 반복 숙달하며, (과외) 선생님이 떠 먹여주기도 한다. 공부에 대한 주된 동기는 주로 부모님과 선생님에게서 나온다. 이 게임에서 성공하는 학생은 현재보다는 미래를 바라보고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통제하고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방법을 배운다. 교과서를 감히 의심하거나, 그 이상을 알려는 것은 비효율적인 일이다. 시험 점수를 받을 수만 있다면 무턱대고 외워도 되기 때문이다. 출제 경향을 짚어 전과목에 적절한 시간을 배분하고, 빠른 시간에 정확하게 답을 골라내는 것이 핵심 기술이다.
대학원은 이와 다르다. 여기서는 자신의 선택으로, 스스로 정의하고 발견해 나가는 공부를 한다. 또한 이해의 깊이가 핵심이기 때문에 ‘전과목에서 고른 성적’을 받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끊임없이 묻고, 가설을 세우고, 이를 검증하여 이론을 만들고,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 이해시키는 것이 능력이다.
지나친 이상론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많은 대학원생들이 자신보다는 지도교수에 의해 주어지는 일을 하지 않냐고, 대부분의 경우 그저 때맞춰 졸업하여 그럴듯한 곳에 자리잡는 것이 목표 아니냐고 말이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도 여기 오기 전에는 비슷한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물론 원하는 공부를 한다는 핵심 동기가 있었지만, 주변에서 ‘눈 딱감고 5년만 버티면 된다’는 말을 들어도 별 거부감이 없었다. 고3때처럼 ‘밝은 미래’를 떠올리며 현재의 고통을 감내하면 될 줄 알았다.
여기 와서도 처음에는 그렇게 스스로를 채찍질했던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서 어려운 수학책을 진도에 맞춰 읽기도 했고, 일년 내에 첫 논문을 쓰겠다고 랩에서 연구 주제를 붙잡고 늦게까지 있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오래 가지 못했다. 고통도 고통이었지만, 무엇보다도 그렇게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했던 공부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연구 자체도 뭔가 꽉 막힌 느낌이었다.
몇달이라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익숙한 환경에서 부모님의 보호를 받는 상황이라면 좀더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타국에서 혼자 수년을 그렇게 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것도 인생의 황금기에 말이다. 설사 가능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대학원 생활은 고3처럼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가 중심이 되지 못하고 공부를 수단으로 전락시켜서는 새로운 발견을 가능케하는 깊이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창조에 필요한 에너지는 대상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에서 나온다는 것, 무엇보다도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정해진 목표에 스스로를 얽매기보다는, 자신의 분야에 푹 빠져 스폰지처럼 지식을 흡수하고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는 자유를 만끽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고 공부할 내용을 해치워야 하는 정복의 대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마음 깊은 곳에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시험만 끝나면 다 잊어버려도 되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벗삼고 키워가야 할 지식이니 말이다. 그제서야 외계어처럼 보이던 책들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논문을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고서야 주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이는 말처럼 간단한 일이 아니다. 어리고 예민했던 시절에 각인된 습관을 버리는 일이니 말이다. 심지어 고3 생활을 지나치게(?) 열심히 했던 자신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아직도 20대, 스스로 선택한 길이 나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있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소년들은 야망을 가져야 된다고 하지만, 대학원생은 야망을 버려야 할 것 같다. ’야망’이 상징하는 세속적 가치가 눈이 들어오는 순간 연구자로서의 눈은 멀게 되니 말이다. 다만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지금의 숨가쁨이 훗날 대양을 주유(周遊)하는 돌고래의 해방감으로 바뀌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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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병역특례를 마치고 복학할 무렵 결심한 것이 있었으니, 좋아하는 일을 평생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이 끌리는 일은 놀랄만한 집중력으로 해내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보다는 눈에 보이는 조건을 위주로 평생의 업을 택한다는 현실을 목격한 후였습니다.
고민 끝에 평소의 관심사와 그동안의 경험,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을 고루 만족시키는 길을 발견할 수 있었고, 이를 좆아 미국에까지 왔습니다. 제가 발견한 것은 정보 욕구(Information Needs)를 만족시키고 나아가 인간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기반 기술 및 정보 시스템의 개발이었습니다. 그동안 꿈꿔오던 일을 더이상 바랄나위 없는 환경에서 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은 흥분 그 자체였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시작하는 것 보다 지키기가 어렵다’고 했던가요… 쉽지 않게 시작한 유학 생활은 시작부터 녹록치 않습니다. 익숙하고 편안한 것과 멀어져 낯선 것에 몸을 맡기는 적응기가 끝나고, 이곳에서의 일상에 다시 적응하기 시작할 무렵, 문득 초심과 멀어져가는 자신을 발견하고 몸서리치게 됩니다.
궁금한 것을 스스로 찾아가며 하나씩 깨우쳐가는 배움의 즐거움은 내일로 치르는 시험에 대한 걱정으로, 군더더기없이 잘 설계된 코드가 동작하는 것을 보는 희열은 연구 프로젝트 결과에 대한 부담으로 대체되어 갑니다. 놀이라 부르던 것이 일이 되고, 그 일이 쌓여 부담이 되고,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해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회의라도 찾아올때면 정말 집에가고 싶어집니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지 않는 것은 우아한 삶의 조건이다. – 시오노 나나미
예전에 책에서 이 구절을 읽고 강하게 부정하던 기억이 납니다. 좋아하는 일을 일을 하지 못한다면 성공해도 성공한게 아니라고 믿었던 저로서는 도저히 공감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지켜가는 것이 이렇게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면 생각을 고쳐먹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녕 직업은 생계 수단으로, 그리고 인생의 의미는 그 밖에서 찾아야 하는 것인가요.
좀더 노력하려 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순진한 믿음을 버리지 않으려 합니다. 스스로 객관적인 성취보다는 내면의 만족을 중시하기에 가능하다고 봅니다. 단 이런 결과가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뼈저리게 배우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도 ’일’입니다. 일은 자신,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약속입니다. 학자가 되는 일은 분명 취미로 책을 읽고 자료를 조사하는 것과 다른 결심을 필요로 합니다. 꾸준히 결과를 내고, 다른 사람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야 합니다.
하지만, 이에 우선하는 것이 내면의 불꽃을 지키고 활활 타오르게 하는 것입니다. 학과 세미나에서 어떤 교수님이 동기(motivation)야말로 가장 희소한 자원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공감했습니다. 대상에 대한 순전한 호기심, 진리 탐구에 대한 열의를 잃어버린 사람은 학문을 할 수 없습니다. 학문을 명예나 부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것도 이런 사람들의 책임일 겁니다.
조용히 앉아 마음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하루를 보내고 싶은 오후입니다.
모범생이 싫다 (1) | 2008.0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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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Mass Amherst에 도착했습니다. (0) | 2007.09.13 |
미국 생활 시작한지 이제 두달 남짓, 아직 어떤 판단을 내리기에도 충분치 않은 시간입니다. 하지만 유학 생활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후회없는 시간을 만들어갈 수 있을지 감이 조금씩 옵니다. 예전에 “xx는 xx야!”하고 선언하는
개그가 있었죠. 저도 한번 해 보렵니다.
유학 생활은 암벽 등반이야!
너무 비관적인가요? 그러나 상당히 애착이 가는 비유입니다. 둘다 상당한 결심이 없이는 시작하기 힘듭니다. 그리고 일단 시작하면 계속 가야 합니다. 중간에 기댈 곳도 없고 멈추는 것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단 올라가면 상당한 성취감을 줍니다. 하지만, 성취감만으로 버티기에는 너무나 고되기에, 과정에서 즐거움을 발견해야 합니다. (올라가는게 목표라면 굳이 암벽을 택하지는 않겠죠 ;)
유학을 ‘암벽 등반’으로 생각하면 어떻게 임해야할지가 그려집니다. 우선 기본은 철저한 자기관리일 겁니다. 끝까지 무너지지 않고 꾸준히 갈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해야 합니다. 낯선 상황에 봉착해서도 흔들리지 않도록 평소에 꾸준한 준비를 통해 여유를 만들어야 합니다. 경험적으로 볼때 타국에서 혼자 겪는 어려움은 종류에 관계없이 두 배는 힘듭니다.
절제와 극기로 생활의 질서와 기본적인 여유가 확보된 다음에는 주변을 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개방된 마음을 갖고 먼저 다가가는(stepping forward) 것입니다. 단일 민족에 비교적 획일화된 가치관을 갖고 살아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특히 어려운 일입니다만, 개인의 영역을 소중히하는 미국에서는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아무도 자신에게 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고립된 상태에서 젊은 날의 몇년을 지내는 것은 그리 권할만한 일이 아니겠죠.
마지막으로 자신의 일에서 지속적인 의미와 즐거움을 발견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사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충분히 시간을 들여 할 수 있는 것”이 유학생의 특권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지난 두달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을 지켜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임을 잘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연구자로서, 더구나 유학생으로서 이를 잃는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으며 모든 것이 너무나 허무해집니다. 제 2의 생명처럼 여기며 지켜나갈 일입니다.
쓰고 나니 사뭇 비장한 글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본이 없이는 유학 생활의 낭만은 먼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요.
좋아하는 일 지켜가기 (1) | 2007.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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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Mass Amherst에 도착했습니다. (0) | 2007.09.13 |
유학길에 오릅니다. (3) | 2007.08.26 |
한계 중량까지 우겨넣은 이민가방 두개와 캐리어를 끌고 호텔 방에 들어선게 엇그제 같은데, 벌써 이곳에 도착한지 20일이 되어 갑니다. 초반의 시차 문제, 모든 면에서 전혀 새루운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일은 매순간이 도전이었지만, 이제 ’안정’되었다는 느낌이 서서히 들기 시작합니다.
처음 이주간은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어느날 골똘히 생각해보니 미국 생활, 가족과 떨어져 사는 기숙사 생활, 직업으로서의 대학원생, 전공으로서의 컴퓨터 과학 등등 저를 둘러싼 환경 중 바뀌지 않은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혼자 빨래 한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제가 무슨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는지 갑자기 궁금해지며, 그정도 정신을 차리고 있는 것도 다행이라고 새삼 생각했습니다.
어쨌든 이왕 이렇게 된 바에 스스로를 한번 푹 담가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곳에 가 보고, 기회를 만들어 예전에 해보지 못했던 것을 시도했습니다. 미국 학생들의 파티에도 가 보고, 그 어렵다는 냄비밥에도 도전해 시행착오 끝에 밥다운 밥을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미국 생활에서 서로 힘이 되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혼자 어떻게든 살아나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학교 및 연구실 생활도 많은 부분이 결정되었습니다. 연구실의 Bruce Croft, James Allan교수님과 면담을 하여 저의 리서치 비전과 랩의 연구 주제의 접점을 논의하였고 첫학기 수업인 정보검색(Information Retrieval)과 자연어 처리(Natural Language Processing)도 들어보았습니다. 다행히 교수들께서는 제 연구 관심사에 대해 호의적이시며, 수업 역시 정말 충실합니다. 자연어 처리 수업은 특히 기계학습 정보 추출 (Information Extraction)분야의 대가급 연구자인 Andrew McCallum교수님의 강의라 들어갈 때마다 긴장과 흥분의 연속입니다.
예전에 일주일간 맛본 적은 있었지만, 미국이라는 환경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하루종일 돌아다녀도 먼지하나 뭍지 않고 어디서나 수돗물을 틀어 마실 수 있는 꺠끗한 환경에, 전세계 방방곡곡에서 온 사람들이 나름의 방식을 지켜가면서도 서로 조화를 이루어 살아가는 모습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제가 있는 Amherst는 조용한 교외의 학교 타운이라 예전에 시애틀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 사회의 어두운 모습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마주치는 미국 사람들도 활기차고 친근한 모습입니다. 특히 한국과 달리 학교, 가게, 식당 등 어디가나 마주치는 스텝들의 친절은 인상적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진정 자신의 일에 만족하고, 그 일을 통해 세상에 기여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듯 합니다. 연구실에 같이 들어온 동료(대부분 석사 졸업생)가 여섯 명이나 되어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다시 찾은 안정과 편안함이 나태와 향락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려고 합니다. 너무 많은 일, 복잡한 생활에 어떤 일에도 집중할 수 없었던 한국에서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먹는 일을 제외하고는 물건 구입도 최소한으로 하고, 유희만을 목적으로 하는 활동도 자제하려 합니다. 핸드폰, 차, TV 등은 당분간 없이 지낼 생각입니다. 지금 제 책상에는 소로우와 스콧 니어링의 책이 꽃혀 있습니다.
주어진 여건에 만족하고, 순간순간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저를 아껴주시고, 이끌어주신 많은 분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처음 마음 지켜가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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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길에 오릅니다. (3) | 2007.08.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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