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생의 뒤늦은 iPad 사용기

Review : 2010. 10. 26. 12:56   By LiFiDeA
며칠전에 종이의 가치를 강조하는 글을 썼지만, 조만간 참석하는  ACM CIKM 2011 컨퍼런스에서의 포스터 발표에 활용할 요량으로 iPad를 구입하였습니다. 여기 미국에서 살 사람들은 다 산 물건이긴 하지만, 뒤늦게나마 대학원생의 관점에서 간단한 리뷰를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컨텐츠 소비에서 생산까지

iPad가 컨텐츠 소비에 최적화된 디바이스라는 점은 익히 들었지만, 소파에 편안한 자세로 앉아 베터리 등에 신경쓰지 않고 몇시간이고 앉아 뭔가를 읽거나 볼 수 있다는 것은 기존 노트북 사용과 차별화되는 경험입니다. 그리고, 하루에 적어도 두세시간을 뭔가 읽으면서 보내는 저같은 사람에게 이는 작은 차이가 아닙니다. 물론 아직은 종이를 읽는것과는 다르지만, 출력의 번거로움과 출력된 결과물의 관리가 어려운 점을 감안하면 iPad와 같은 디바이스의 존재가치를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사용자 경험의 완성을 위해서는 프로그램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PDF 읽기를 살펴봅시다. 처음에 애플 스토어에서 테스트해본 웹브라우저 상의 PDF리더는 썩 훌륭하지는 않았지만, 기본 프로그램에서 부족한 부분은 Third-party 엡들이 모두 채워주고 있습니다. 제가 사용하는 GoodReader라는 프로그램은 iPad에 최적화된 스크롤링 및 글자가 있는 부분만 남기고 화면을 Crop해주는 기능, 문서에 주석을 달아 저장하고 메일로 보낼 수 있는 기능이 포함되어 사실상 논문을 읽는데 전혀 문제없는 환경을 제공합니다. 처음에 걱정했던 PC 및 앱간의 파일 교환 역시, 어디서나 같은 스토리지를 공유하게 해주는 DropBox가 많은 앱에 거의 표준으로 사용되어 별 문제가 없습니다. 

별 기대를 하지 않았던 글 작성 및 컨텐츠 생산 역시 기대 이상으로 훌륭합니다. 열손가락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넓은 스크린을 이용한 타이핑도 그렇고, 양손을 모두 사용하는 터치 인풋 역시 오히려 하나의 커서를 사용하는 마우스 입력보다 효율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모든 distraction을 없애고 글쓰기에만 집중하게 해주는 IA Writer 및, 터치 인풋을 최대한 활용하는 iPad용 드로잉 프로그램인 OmniGraffle을 사용해본 결과 맥북을 사용하는 것보다 오히려 편리한 점도 있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노트북과 스마트폰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제 3의 디바이스라고 했을때 반신반의했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많이 수긍이 갑니다. 또한, 잡스가 최근에 7인치 타블렛에 대해 혹평한것도 이해가 갑니다. 그의 말처럼 9인치의 iPad는 제대로 된 읽기 및 쓰기를 위해 최소한의 크기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완벽에 가까운 제품으로, 존재하지도 않던 시장을 창출해낸 애플의 기획 및 기술력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아쉬운 점? 

물론 첫 모델이니만큼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아직 손으로 들고 작업하기에는 상당히 부담스런 무게에, 프린팅에 최적화된 PDF등으로 작은 글자를 읽을 때 화면 해상도의 한계가 느껴집니다. 한글 입력과 멀티태스킹은 11월에 나올 iOS 4.2에서 구현된다고 하지만, 역시나 아쉬운 부분입니다. 또한, 지난 포스팅에서 언급한 유연성(freedom of expression) 관점에서 보면 아직 Freehand 인풋과 드로잉, 그리고 키보드 입력을 우아하게 결합한 프로그램은 눈에 띄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입니다.

또한 펜(스타일러스) 인풋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적잫이 실망했었는데, 95%의 작업은 오히려 손가락이 편한 것 같습니다. 나머지 5%의 경우를 위해 펜을 구입하고, 휴대하고, 또한 손가락과 번갈아가며 사용하는 번거로움을 감안하면 득보다 실이 클지도 모릅니다. 어느 누구도 펜없는 타블렛을 상상하지 못할 때, 과감히 펜을 제외한 iPad를 내놓은 애플(스티브 잡스)의 판단력이 빛을 발하는 부분입니다. 그래도 펜이 꼭 필요한 경우가 간혹 있기에, 이후 모델에서는 펜 입력을 지원해주기를 바랍니다.

iPad가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까?

iPad가 여러가지 면에서 매력적인 기기임은 분명하지만, 제 경우 아직 이런 장점이 곧바로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정보기기가 사용자의 작업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기존의 워크플로우(workflow)에 통합되고, 이를 개선할 수 있어야 하기 떄문입니다. 예컨데, 아직 delicious에 저장된 제 북마크를 가져오는 방법을 찾지 못했고, 저처럼 웹이나 블로그에서 무언가를 읽으면서 내용을 따로 정리하는 사람에게는 (효과적인 태스크 스위칭의 미비로 말미암아) 메모 프로그램과 브라우저를 오가는 과정이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이러한 작은 불편들이 때로는 다른 모든 장점을 무효화시키기도 합니다.

또한, 워낙 다용도에 엡의 종류도 많다보니, 아직 새로운 기능을 익히고 테스트하는데 많은 시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진득하게 책을 읽거나 할 정신적 여유를 찾기가 힘들다는 불평아닌 불평이 생깁니다. 오직 독서만이 가능한 장점(?)때문에 킨들은 샀다는 친구의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구입한지 한달이 채 지나지 않았기에 앞으로는 좀더 제대로 활용해보려 합니다.

p.s. 내일부터 열리는 CIKM 2010에 참석하기 위해 토론토에 와 있습니다. 한동안 Twitter계정을 두었는데, 이번 학회에서는 적극 활용해볼 생각입니다. @lifidea를 팔로우해주세요 ;)

노트북에 킨들, 최근에 아이패드까지 보급되면서 종이를 포기한 (go paperless) 분들이 점점 늘어나는 듯 합니다. 종이는 부피를 많이 차지하고, 출력이나 보관이 번거로우며, 결정적으로 검색도 되지 않으니 Scalability가 많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종이를 포기하기에는 아직도 그 매력이 만만치 않습니다. 제가 말하고픈 매력은 편안한 소파에 앉아 책장을 한장씩 넘기면서 느끼는 종류의 센티맨털한 것이 아니라, 연구자로서 창조 활동을 도와주는 실용적인 가치입니다.


가용성 (anytime, anyplace)

창조 활동의 특징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샤워하는 도중 위대한 발견의 씨앗이 되는 영감을 얻었다는 이야기는 아르키메데스가 아니라도 많이 듣습니다. 저의 경우, 비행기에서 굉장히 창의적인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스쳐가는 아이디어를 포착하는데는 아직 종이만한 것이 없습니다. 전자 기기의 특성상 배터리 시간, 인터넷 연결 여부 등에 따라 사용이 불가능한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절대 시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가진 기기가 작동하지 않을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두뇌의 창의적 의욕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유연성 (freedom of expression)

가용성의 문제는 최근 기술의 발전으로 많이 해결된 것 같습니다. 10시간 사용 가능한 노트북이나 타블렛은 더이상 드문 이야기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정보기기에 비해 종이가 아직도 갖는 더 큰 장점은 유연성(표현의 자유)일 것입니다. 무제약의 저장공간(종이)에 자유로운 입력장치(펜)로 표현가능한 모든 것을 담을 수 있으니까요.

연구를 위한 아이디어를 종이에 스케치하는 장면을 상상해봅시다. 먼저 문제의 핵심적인 조건과 금방 떠오르는 해법을 몇가지 적어봅니다. 그러다 전체를 아우르는 큰 그림이 떠오르면 다이어그램을 그립니다. 마음에 드는 그림이 나올때까지 지우개로 지워가며 몇번이나 수정을 거듭힙니다. 이제 완성된 큰 그림을 염두에 두고, 세세한 알고리즘을 묘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알고리즘의 수행시간을 어림잡아 계산(back-of-the-envelope calculation)해 보고, 수행 일정까지 구상합니다. 마침내 그럴듯한 연구 계획이 나왔습니다!

물론 가상의(contrived) 사례이기는 하지만, 이를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하기 위해서는 오피스 패키지의 모든 기능을 총 동원해도 모자랄 것입니다. 이론상으로는 가능하겠지만, 프로그램을 수행하고, 이들간에 데이터를 옮기고 하는 사이에 창의적 활동에 필수적인 경쾌한 리듬을 유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만약 여러 디바이스를 사용한다면 작업의 복잡성은 더욱 커집니다. 여백에 써내려가기만 하면 되는 종이의 간편함과 대조되는 측면입니다.

자연스러움 (it just feels right)

기술이 더 발전하여 위에서 언급한 유연성의 문제를 거의 완벽하게 해결한 정보기기가 나왔다고 가정해봅시다. 과연 그때 저는 종이를 쉽게 버릴 수 있을까요? 아마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누구나 어릴때부터 종이를 사용하여 수많은 문제를 해결해왔고, 다양한 간접 경험(예: 종이에 뭔가 열심히 스케치하는 예술가를 담은 영상)을 통하여 '창조의 수단=종이'라는 공식이 어느 정도 두뇌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저의 경우, 눈앞에 최신형 컴퓨터보다도 깨끗한 종이와 잘 깎인 연필이 있을 때, 창조적 두뇌가 훨씬 활발하게 움직이는 듯 합니다. 이것은 설명할 수도 없는 단지 '느낌'일 뿐이지만, 창조라는 미묘한 작업에 있어서 '느낌'의 차이는 결정적일 수도 있습니다. 많은 작가들이 특정한 작업 공간이나 필기구를 고집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정보기기가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이런 느낌까지 흉내내기는 쉽지 않은 일 같습니다.

마치며

연구자로서 저의 목표중 하나가 '인간의 지적 능력을 극대화시키는 정보기기를 만드는 것'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마음 편하게 쓸 수 있는 글은 아닙니다 ;) 하지만, 개인용 컴퓨터가 대중화된지 30년이 넘어서도 '창의성'이라는 측면에서 아직도 종이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좌절하기보다는, 종이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떠올려 보려고 합니다.

항상 사용가능하며, 표현의 무한 자유를 보장하며, 종이의 촉감 만큼이나 자연스러운 정보기기, 꿈이라도 구체적으로 꾸어보면 언젠가는 현실이 될 수 있겠죠? 애플의 디자인 철학과 관련된 예전 포스팅에서 발견한 인용구로 이 글을 마무리할까 합니다.

"For us, it is all about refining and refining until it seems like there's nothing between the user and the content they are interacting with."
-Jonathan Ive, Chief Designer in Apple Corporation

MS Bing에서의 인턴을 마치고

유학생활 : 2010. 9. 12. 07:34   By LiFiDeA
최근에 3개월간의 인턴 생활을 마쳤습니다. Bing서치와 MSR Clues그룹에서의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피드백을 받고, 짐을 챙기다보니 제 사무실이 있는 Bellevue에 처음 왔을때가 생각났습니다. 그때는 낯선 환경과 일에 대한 기대와 불안감이 가득했는데, 어느새 이곳에서의 생활에 정착한 느낌에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인턴 기간동안 느낀점에 대해 써볼까 합니다.


박사 졸업 후 진로 : 회사냐 학교냐

인턴십은 많은 부분 일 자체보다는 일을 통한 배움에 의의가 있을 것이며, 그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마도 향후의 진로에 대한 더 나은 의사결정(informed decision)을 내리는 데 있을 것입니다. 지난 포스팅에서 언급했듯이, 제게 가장 중요한 결정은 향후에 산업걔(industry) 혹은 학계(academia)에 진출하느냐였습니다.  물론 인턴십 한번으로 회사 생활의 모든 것을 파악할 수는 없지만, Bing과 MSR에서의 경험은 많은 것을 명확하게 해 주었습니다. 저의 깨달음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회사는 제한된 환경에서의 보호를, 학교는 자유로운 환경에서의 책임을 제공한다.
처음 회사 생활을 시작했을 때, 실 사용자의 데이터를 가지고 마음껏 실험을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매일 매일이 흥분의 나날이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라는 큰 조직이 주는 안정감과 지원, 그리고 보상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초기의 환상에서 조금씩 벗어나면서 회사라는 환경에서 근무하는 연구자들이 받는 제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연구 프로젝트를 선택하고, 진행하고, 결과를 발표하는 모든 과정에서 회사의 정책과 우선순위를 먼저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자신과 철학을 공유하는 조직에서 일을 한다면 이는 별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어떤 경우에도 학자로서의 독립성을 희생해야 하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반면에 학계에서의 생활은 많은 부분 스스로의 선택과 책임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신임 교수나 연구원으로서 자신의 관심사에 부합하는 펀딩(grant)을 따 내고, 이를 같이 수행할 협력자들과 학생을 구해야 합니다. 자신이 선택한 일을 뜻이 맞는 사람들과 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이 과정을 모두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기도 합니다. 미국에서 신입 조교수들이 대부분 엄청난 스트레스와 과로에 시달리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겁니다. 

아울러 학계에서의 실적은 퍼블리케이션 등을 통해 투명하게 공개되므로, 학계에서 회사로 자리를 옮기기는 비교적 용이하지만 그 반대는 좀더 힘들어 보인다는 점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항까지 고려한다면, 만약 연구자로서 자신의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회사를 찾을 수 있다면 그곳을 선택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학교에 자리를 잡는 것이 낫다는 생각입니다. 학자로서의 자유와 독립성을 보장받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더 중요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절충안으로는 Microsoft Research등의 산업체 연구소에 자리를 잡는 방법도 있습니다. 

성공적인 인턴을 위한 조언

다음으로, 인턴 생활을 더 잘 하기 위해 염두에 둘 사항입니다. 우선은 맨토(상사)를 잘 만나는 것이 중요한데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맨토의 개인적인 능력과 스타일도 중요하지만, 회사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에 있어야 인턴으로 있는 자신에게 필요한 자원(머신, 데이터 등)을 구해주고, 잡무 등에서 보호해줄 수 있습니다. 

다음은 인턴 기간동안 수행할 프로젝트의 선택입니다. (프로젝트가 주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몇 가지 중에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보통입니다.) 3개월 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어느 정도의 성과가 나올 수 있는 적당한 크기와 난이도의 일을 선택하는 것은 기본이며, 더 중요한 점은 프로젝트에 필요한 자원을 얼마나 쉽게 구할 수 있느냐입니다. 저의 멘토는 항상 이렇게 말했습니다.
Don't choose a project unless you have the data ready at the 1st day of your internship
실제로 주변에서 선택한 프로젝트의 데이터가 준비되지 않아 한달 가량을 허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문제 정의 및 데이터 분석, 해결책 도출 및 정리 발표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을 고려하면, 착수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프로젝트는 피해야 할 것입니다. 다른 고려사항은 맨토 및 자신의 팀이 얼마나 해당 프로젝트에 관심을 기울이느냐입니다. 프로젝트가 다른 사람들의 관심사에 부합할 경우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인턴 기간에 결과를 내기가 용이해집니다. 또한 인턴 기간 이후에도 다른 사람들이 이를 계속 수행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실시간 검색(real-time search)라는 토픽에 관심이 있었고 실제로 이를 선택할 수 있었지만, 위 사항을 고려하여 다른 프로젝트를 선택하였습니다. 결과적으로 필요한 데이터를 매우 쉽게 구할 수 있었고, 맨토 및 팀의 지속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었기에 올바른 선택이 아니었나 합니다. 인턴 생활을 통해 졸업이 앞당겨진 것은 아니지만, 회사에 의미있는 기여를 할 수 있었고, 새로운 분야의 연구 경험을 할 수 있었기에 만족스러웠습니다.

글을 마치며

3개월이라는 기간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에도 바쁜 시간입니다. 하지만, 학교 생활과는 전혀 다른 회사에서의 업무 경험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합니다. 늦어도 어느 정도 학교 생활에 익숙해지는 3~4년차에 꼭 지원해볼 것을 권합니다. 

3년전 처음에 유학 생활을 시작했을 때, 제게는 여러모로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학부에서 대학원 과정으로, 전자 전공에서 컴퓨터 전공으로, 마지막으로 가족과의 삶에서 자취로 바뀌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변화가 버겁게 느껴졌었지만, 선택의 기로에서 낯설더라도 더 진취적인 길을 택한 것이 더 많은 배움을 가능하게 하지 않았나 합니다. 

이번 인턴십을 시작하면서도 꽤 많은것이 바뀌었습니다. 미국 동부에서 서부로, 학교에서 회사로, 교수님과 일하던 생활에서 상사(여기서는 mentor라고 부릅니다)와의 업무로, 데스크톱 및 개인 정보의 검색에서 웹 검색이라는 주제로  바뀌었습니다. 이제 한달을 보냈지만, 그동안 배우고 느낀 것이 지난 3년간의 그것에 필적한다는 느낌입니다. 여기서는 그 중 몇가지를 적어보려 합니다.

'틀'이 주는 편안함

처음에 대학원을 선택한 이유중 하나는 '자유로움' 이었습니다. 병역특례로 회사경험을 하면서,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 '내 일' 보다는 '회사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갑갑했었나 봅니다. 미국 대학원에서 원하는 공부를 하면서는 비로소 관심 분야의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교수님의 신뢰를 얻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필요했지만, 그 이후에는 일을 하는 시간과 장소, 방식에 있어서도 거의 무한의 자유를 부여받았습니다. 어찌보면 예전에 꿈꾸던 삶에 다가간 것입니다. 

회사 생활을 다시 시작하면서부터는, 이런 자유에 길들여진 자신이 다시 회사 생활이라는 틀에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출퇴근 시간 및 프로젝트의 결정 및 진행이 개인의 책임하에 이루어지는 여기서의 생활은 그다지 답답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수행하던 예전에 비해, 조직에서 부여하는 어느 정도의 틀에 따라 규칙적으로 이루어지는 이곳 생활이 훨씬 편안했습니다. 학교에서는 한순간도 연구에 대한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으며 스스로 많은 결정을 내려야 했지만, 여기서는 많은 일들이 이미 결정되어 있으며 업무시간에는 열심히 하다가도 퇴근 후에는 회사 일이 머리를 자연스럽게 떠나기 때문입니다.


학계와 업계에서의 연구

검색이라는 분야에 뛰어든 것도 3년이 지났지만, 그동안 학문적인 관점에서만 접근해 왔고, 제 주변에도 모두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여기 와서 달라진 점은,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검색 연구자 및 개발자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습니다. 분야의 특성상 학계와 업계의 연구가 명확하게 분리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둘의 초점은 꽤나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우선 학문으로서의 검색은 고정된 질의어(query) 셋에 대하여 베이스라인 시스템 대비 몇 퍼센트의 성능향상을 가져오는 알고리즘 및 피쳐를 개발하는 것, 그리고 더 중요하게는 왜 이들이 잘 동작하는지를 밝혀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연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서 굉장히 크고 복잡하며 이미 엄청난 노력이 집약된 상업용 검색 엔진을 대상으로 하기에, 학계에서처럼 단순한 지표 몇개로 평가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또한 사용가능한 데이터의 양이 제한된 학계에 비해, 실 사용자의 모든 활동이 기록되는 이곳의 환경에서는 실 사용자의 반응에 근거하여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 용이합니다. 

요약하면 학교에서의 연구는 Why에, 여기서의 연구는 How에 초점을 맞추며, 이런 차이가 업계에서의 연구를 과학(science)보다는 공학(engineering)에 가깝게 합니다. 수많은 피쳐와 검색 모델이 개발 및 사용되지만 왜 그것이 동작하는지는 두번째 문제입니다. 엄청난 양의 데이터가 쌓이지만, 이러한 데이터의 새로운 활용법을 찾기 위해 고민할 여유는 별로 없습니다. 학교에 있으면서 실제 사용자와 유리된 연구 환경에 답답함을 느꼈었지만, 이런 공학적 접근을 보면서 학문으로서의 검색 연구가 갖는 가치를 돌이켜보게 되었습니다. 

마치며

아직 한달이 갓 넘은 회사 생활에 대한 결론을 내리기는 쉽지 않지만, 어쨌든 잘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회사 진학을 계획중이라면 맛보기 및 네트워킹을 위하여, 학계를 꿈꾸는 사람이라도 자신의 선택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해주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이공계 대학원생의 여름 인턴,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작년부터 검색 서비스 업계의 화두는 '실시간 검색'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검색엔진 빅3(구글, 야후, 빙)에 이어 국내 포탈에서도 실시간 검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최근 구글의 카페인 인덱싱 발표를 계기로, 더 신속한(fresh) 결과를 제공하기 위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구글의 발표 및 그리고 실제 사용자들의 테스트 결과에 따르면 블로그 및 뉴스 페이지가 업데이트된 후 검색에 표시되기까지 1분도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실시간 검색이야 이미 다 되는 기술인데 뭐가 대수냐고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지난번 네이버의 개편 관련 포스팅에서도 언급했한대로 실시간 검색에 대한 빅3와 국내 포탈의 접근방법은 완전히 다릅니다. 오늘은 실시간 검색과 관련된 연구 결과를 요약해 보겠습니다.

야후! 리서치에서 발표한 최근 연구 논문에 따르면 실시간 검색의 주된 이슈는 1) 질의의 실시간성을 가리는 것 2) 실시간성 질의에 대한 더 나은 결과를 제공하는 것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컨데, 마이클 잭슨의 사망소식이 전해졌을 때 질의어 'michael jackson'에 대해 최신의 권위있는 뉴스 결과를 제공한다면 성공입니다. 

이들은 실시간성 질의의 경우, 갑자기 질의량이 폭증한다던가 최신 뉴스 기사에 등장하는 단어가 사용된다는 등의 특성(feature)을 이용하여 최대 90%의 확률로 실시간 질의를 가려냅니다. 이런 식으로 분류된 실시간성 질의에 대해서는 문서의 시간, 종류, 속보성(hotness)등을 랭킹에 적극 반영합니다. 하지만 실시간 질의의 경우에도 기존에 사용하던 기법이 유효하기에, 기존 검색 모델의 성능을 살리는 동시에 실시간성을 고려하기 위해 이들은 세가지 기계학습 기반의 검색 모델을 제시합니다. 마지막으로, 일반 질의와 실시간 질의 처리에 모두 사용가능한 학습 데이터를 만들기 위해서 이들은 문서의 품질 평가에 일반적인 기준을 번저 적용하고, 나중에 실시간성을 반영하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이처럼 실시간성 질의와 일반 질의를 분리하여 처리하기에, 각각의 유형에 따른 적절한 결과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이들의 최신 논문에서는 트위터 등의 SNS를 활용하여 실시간성 질의의 검색 결과를 더욱 향상시키는 결과를 볼 수 있습니다. 이외에, 실시간성 질의가 아닌 경우에도 문서의 업데이트 주기 등을 랭킹에 반영하는 방법이 제안되기도 했습니다. 이번 구글의 발표내용을 살펴보아도, 모든 웹페이지의 변화 내용을 감시할 수는 없기에 페이지의 중요도 및 업데이트 주기를 고려하여 인덱싱의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등 실시간 검색 구현을 위한 고려사항이 복잡다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실시간 질의를 제대로 구현하는 데에는 인덱싱에서 검색 모델과 특성(feature), 그리고 평가에 이르기까지 많은 고려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국내 포탈에서는 아직 제한된 검색어에 대해 편집된 결과를 제공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뉴스 속보 등에 관련된 질의에는 대응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검색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테일(tail - 적은 빈도의) 질의에는 제대로 대응할 수가 없습니다. 검색 엔진의 경쟁력이 사실상 테일에서 결정된다는 점, 그리고 앞으로 검색엔진에 대한 의존도가 증가하면서 질의의 범주도 다양화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어제 우리나라가 그리스를 상대로 통쾌한 승리를 거두었죠? 이럴 때는 특히 서울광장에서 얼싸안고 소리지르고 있을 친구들이 부럽지만, 고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기만하니 스포츠의 힘이 참 대단합니다. 며칠 전 스포츠가 줄 수 있는 교훈을 실감한 일이 있어 소개합니다. 

보도를 통해 많이들 아시겠지만, 최근 미국에서 메이저리그를 떠들썩하게 했던 일이 있습니다. 퍼팩트 게임을 기록하던 디트로이트의 투수 존 갈라라가(John Galarraga)가  9회 2사후에 마지막 타자를 상대로 잡아낸 내야땅볼 아웃을 1루심 짐 조이스(Jim Joyce)가 안타로 판정하여 기록을 놓치게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모두들 명백한 오심을 범한 심판을 질책하고 기록을 놓친 투수를 위로했었는데요, 훈훈한 뒷이야기가 소개되면서 여론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 뒷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우선 존은 오심 직후 그 당사자인 1루심을 향해 미소를 보이고 (속은 탓겠지만)  다음 타자를 침착하게 처리하여 경기를 마무리지었습니다. 경기 직후 비디오 판독으로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1루심 짐은 곧바로 존에게 다가가 눈물을 글썽이며 진심어린 사과를 하였고, 존은 그에게 "사람이면 누구나 실수를 하는 법"이라며 오히려 위로의 말을 건넸답니다. 다음날 존은 경기 시작전 행사에서 아직도 죄책감에 빠져있는 짐의 손을 잡으며 공개적인 용서의 뜻을 전했습니다. 

이런 사실이 나중에 보도되고, 평생의 위업이 될 수도 있었던 기록을 다른 사람의 실수로 날렸음에도 따뜻한 관용을 보여준 투수와, 자신의 잘못을 바로 인정하고 사과한 심판 모두에게 역사에 남은 품위있는(classy / noble) 행동이라는 찬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결국 투수는 기록상의 '퍼팩트 게임'을 잃었지만, 그 이후의 행동으로 그보다 훨씬 값진 영예를 얻은 것입니다. (존은 이 영웅적인 행동으로 주간 MVP에 선정되기도 합니다.)

흔히 스포츠의 목표를 더 나은 기록을 세우고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스포츠의 더 큰 목표는 '인간으로부터 최선의 모습을 끌어내는 것'에 있지 않을까요. 이런 모습은 대부분 한계를 뛰어넘는 기록이나 경기력이라는 형태로 발현되지만, 때로는 존과 짐의 경우에서처럼 실수를 인정하고, 상대방의 과오를 덮어주는 차원높은 인간미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서인지, 오심 논란에도 불구하고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는 야구의 전통에 위배되는 비디오 판독 등의 기술적인 해결책을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야구계에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올 시즌에 스트라이크 존이 갑자기 넓어져 오심 논란이 자주 벌어지고, 이것이 불씨가 되어 그라운드에서의 퇴장 사태가 폭증했다고 합니다. '경기시간 단축'이라는 그다지 설득력없는 이유로 야구라는 스포츠의 핵심이 되는 규칙을 인위적으로 바꾼 KBO측, 그리고 팬들 앞에서 서로 욕설과 삿대질을 하는 선수단 및 심판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씁쓸한 기분이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 대표팀이 미국과 대등한 경기를 펼치기는 했지만,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아직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키피디아는 스포츠맨쉽(sportsmanship)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Sportsmanship expresses an aspiration or ethos that the activity will be enjoyed for its own sake, with proper consideration for fairness, ethics, respect, and a sense of fellowship with one's competitors. Being a "good sport" involves being a "good winner" as well as being a "good loser".


위 정의는 '스포츠'라는 행위의 본질이 '그 자체로서 즐기는' 것이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이런 관점에서 최근 우리 축구 대표팀 선수들이 인터뷰에 '반드시 이기겠다' 보다는 '경기를 즐기겠다'고 말하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변화입니다. 이번 월드컵에서의 좋은 성적은 이러한 태도 변화에도 원인이 있지 않을까요? 

바쁜 1학기를 끝내고, 논문을 한편 제출하고, 마이크로소프트 빙(Bing) 서치에서의 인턴 생활을 위해 시애틀에 온지 일주일이 되어서야 블로그를 쓸 여유를 찾게 되었습니다. 기복 없이 꾸준히 쓰려고 하지만, 글쓰기를 손에서 놓은지가 오래 될수록 다시 잡기도 힘들어지는군요. 그동안 학교에서 논자시 및 석사 학위 자격 심사를 통과하였고, SIGIR에 첫 논문을 내었으니, 변명거리가 없지는 않은가요.

대학원에서의 첫 3년을 마치고, 회사로 출근하여 첫주를 마치고 난 지금, 많은 생각이 교차합니다. 그동안 학교에서 보낸 시간과 내가 배우고 익힌 것들, 검색 연구라는 같은 일을 하지만 많이 다른 회사 사람들, 달라진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해야할 일들...

그중 가장 중요한 깨달음은 학생과 연구자의 차이가 아닐까 합니다. 그동안 학교에서 학업과 연구를 병행하였지만, 주로 성적과 논문으로 평가받고 '졸업'이라는 당면한 목표를 앞둔 상황에서, 현실 세계의 문제를 해결한다는 연구자의 본분과는 조금 거리를 두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여기 와서는 수억명이 매일 사용하는 검색 엔진의 성능을 높이려고 노력하고 그 결과에 따라 평가받는 사람들을 만나고, 저도 같은 책임을 부여받게 되었습니다. 학교에서는 항상 사용자 데이터가 없는 것이 고민이었는데, 여기 와서는 너무나 많이 쏟아지는 데이터를 어떻게 감당할지가 고민입니다. 

이는 분명 제가 꿈꾸던 일이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자 부담이 만만치 않습니다. 학교에서 연구를 할 때는 제한된 데이터를 가지고 온갖 가정을 세워가며 결과를 내는 것이 가능했지만, 여기서는 충분한 데이터가 주어지는 대신에 그동안 엄청난 인원과 자원을 투입하여 갈고닦은 시스템의 성능을 높이지 못한다면 인정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데이터를 얻는 일에서 아이디어를 개발하고, 이를 검증하고, 실제 서비스에 적용하는 과정에 이르기까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기에,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도 큰 도전입니다. 

어쨌든 이제 일주일이 지났지만, 검색 연구자로서 참으로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단순한(?) 검색 모델들이 실제 현업에 적용되기까지 다양한 변형을 거친다는 점, 그리고 실제 그 정도 규모의 검색 서비스가 이루어지기까지는, 핵심이 되는 색인 및 검색 모듈 만큼이나 이를 감시하고 평가하는 지원 모듈이 중요하다는 점도 배웠습니다. 미국에서의 회사 생활, 마이크로소프트라는 조직의 시스템에 대해서도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앞으로 주어진 3개월이라는 시간동안 최대한 배워가려 합니다. 좀더 자주 이곳을 통해 소식 전하겠습니다. 

P.S. 시애틀에 도착해서 찍은 사진을 몇장 올립니다. 








개발과 연구, 개발자와 연구자

어린 시절 나는 찰흙을 가지고 무언가 만드느라 시간이 가는줄도 몰랐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는 일이지만, 신문과 TV에 나오는 각종 신기한 물건을 찰흙으로 만들어 나만의 세상을 만들고 스스로 조물주인양 흐뭇했었던 모양이다. 대학시절 전공했던 전자공학 대신 컴퓨터 관련 수업에 더 빠져들었던 것은 그때의 아련한 추억이 떠올라서였을까. 늘 물리법칙에 구속을 받는 전자공학과는 달리 컴퓨터는 프로그래머가 어떤 법칙에도 구속받지않고 마음껏 창조할 수 있는 자유를 부여하니 말이다. 

병역특례 근무를 했던 회사에서도 나는 참 즐거웠었다. 낮에는 통신회사의 복잡한 요금계산 로직을 구현하고 이를 실시간으로 처리하는 업무를 맡았지만, 밤에는 내 자신의 모든 정보를 내게 맞는 방식으로 관리해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달력으로 시작했던 것이 연락처, 할일, 지식 등등이 멋붙고 나중에는 기록된 정보에 대한 통계를 멋진 차트로 만들어주는 모듈까지 생겼다. 스스로의 삶의 '만족도' 그래프가 (당시에 그런 것도 기록했었다 ;) 올라가는 것을 보면서 뿌듯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처럼 자신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만들고, 이를 실제로 활용하면서 문제점을 찾아내고, 차츰 개선해가는 과정은 참으로 만족스러운 것이었다. 

회사 생활을 마치고 유학을 시작할 무렵, 나는 드디어 내가 꿈꾸던 일을 한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혼자서 스스로를 위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서, 많은 사람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 및 기반 기술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약 3년이 지나 나는 어느덧 실험하고 논문쓰는 대학원 생활에 익숙해졌다. 미국이라는 낯선 환경에도 어느 정도 적응을 했다. 그런데 최근들어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검색 관련 연구를 하다보니 알고리즘 및 프로토타입을 구현할 일이 자주 있는데, 예전만큼 프로그래밍이 잘 되지도 않고 개발에 대한 흥미도 많이 잃은 것이다. 

최근에 하는 고민입니다. 오늘은 이런 문제의식을 토대로 '개발(programming)'과 '연구'라는 활동의 관계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CS연구자에게 개발은 어떤 의미일까요? 개발과 연구를 병행하는 것은 가능할까요? 이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왜 개발과 연구를 병행하는 것이 어려운가?
얼핏 생각하기에도 개발과 연구는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우선은 둘다 본질적으로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입니다. 개발자는 프로그램의 설계와 구현을 통해서, 연구자는 가설과 검증을 통해서 문제를 풀어냅니다. 또한 끊임없이 뭔가를 쓰고, 결과를 확인하고, 고친다는 점에서도 유사합니다. 이처럼 본질적으로 유사한 활동이니 쉽게 병행할 수 있을까요? 3년간의 개발자 생활과 3년간의 대학원 생활을 통해 얻은 결론은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두가지 활동이 각각 완전한 집중을 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폴 그라함은 좋은 개발자라면 머리속에 프로그램의 코드를 완전히 넣고 마음껏 조작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학자들은 세상의 흐름을 밎고 자신의 문제에 오롯이 몰두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완전한' 인데, 창조적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내는데 있어 90%의 집중, 80%의 집중은 별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두가지를 모두 열심히 한다는 것은 서로 다른 두가지 방향으로 동시에 날려는 것과 같습니다.

또다른 측면은 연구와 개발이 내용상으로는 전혀 다른 영역의 활동이며 각각을 위해 상당한 양의 정신적 컨텍스트가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개발자가 효과적으로 일하기 위해서는 프로그램의 설계 및 구현에 관련된 세부사항, 실행환경, API, 기타 등등 엄청난 양의 배경지식이 머리속에 담겨야 하며, 연구자의 경우에도 기존 학설 및 자신의 가설, 실험 방식과 결과 등을 항상 기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완전한 집중'과 이점을 연결지어 생각해보면 개발(연구)을 위해 단련된 두뇌가 연구(개발)에 적응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개발과 연구 활동이 추구하는 목적 자체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어려움도 있습니다. 보통의 개발은 그 결과물인 소프트웨어 자체가 목적이지만, 연구를 위한 개발에서 소프트웨어는 가설 검증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부분의 연구 프로젝트에서 개발을 위한 시간과 노력은 그다지 높게 평가받지 못합니다. 연구를 하면서 개발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 것은 연구자에게 개발이 갖는 우선순위가 낮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개발과 연구를 어떻게 병행해야 하는가?
이처럼 개발과 연구를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으니 어느 한가지에만 집중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CS연구자에게 있어서 (계산이론 등의 순수 이론 분야를 제외하고는) 개발 능력은 상당히 중요한데, 연구의 생산성과 품질이 상당 부분 자신이 작성한 코드의 질에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머신러닝 등의 알고리즘 연구자라도 실험에 쓸 수 있을 정도의 성능과 정확도를 가진 프로그램을 작성해야 하며, 실제 사용자를 대상으로 실험을 해야 하는 검색이나 HCI등의 분야에서는 오랜 기간 사용가능한 견고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는 조건까지 붙습니다.

이처럼 피할 수 없는 개발, 어떻게 해야 연구와 병행할 수 있을까요. 가장 먼저 자신이 풀타임 개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연구자의 본업은 연구이기에, 개발자로서는 파트타임입니다. 주어진 시간과 에너지를 온전히 개발에 투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머리에 항상 자신의 프로그램을 넣어둘 수 있는 사치는 허용되지 않으며, 프로젝트에 관한 사항을 모두 잊은 상태에서도 신속하게 다시 개발에 착수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최근에 다시 깨닫고 있는 것이 문서화와 테스트의 중요성입니다. 잘 쓰인 문서를 읽고 테스트를 돌려보면 자신의 코드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 알고, 해당 기능의 동작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서가 없어 개발에 다시 착수할 때마다 소스코드를 다 훑어야 한다면, 그리고 테스트가 없어 코드를 수정하고도 제대로 동작하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면 생산성이 떨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물론 가능하면 애자일(agile)한 언어를 사용하고, 잘 모듈화된 코드를 작성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좀더 구체적인 개발 툴 및 방법론은 따로 포스팅하겠습니다.)

이외에도 건강한 코드 유지를 위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코드 리뷰(code review)입니다. 즉, 정기적으로 자신이 짠 코드를 훑어보고 문제점을 찾아내고, 테스트 및 문서를 추가로 작성하는 등의 유지보수 활동을 (주로 한가할 때) 해야 한다는 겁니다. 평소에 기능을 구현하거나 문제를 수정할 때에는 보통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일단 돌아가는 코드를 만들고 끝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코드 리뷰을 통해서 전체 설계에 어긋나는 부분을 찾아서 개선하고 코드를 항상 최상의 상태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기업의 코드리뷰 프로세스에 대해서는 고감자님의 글을 참고하세요.)

이런 준비를 하더라도 역시 머리가 개발 모드에서 연구 모드로 넘어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같은 경우에는 개발에 착수한 후에 제대로 생산성을 내기까지 최소 이틀 정도가 걸리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일정 조정을 통해 개발이 필요한 일을 한번에 모아서 처리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루의 특정 시간에 특정 활동을 한다는 규칙을 세우는 것도 두뇌가 준비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저같은 경우에는 오전에 연구 관련된 활동을, 오후에는 개발을, 저녁에는 블로깅 등 기타 활동을 하기로 정하였습니다.

마치며
최근 개발 프로젝트가 문제에 봉착했을 때,  '개발을 전혀 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역시 불가능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물론 회사에서나 학교에서나 나이가 들수록 실제로 코딩을 하는 빈도는 줄어드는 게 보통이지만, 스스로 개발을 하지 않더라도 관리자로서 개발 프로젝트에 관한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거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더 큰 책임이 주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개발자로서의 '감'을 잃은 관리자가 이런 상황을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으리라고 상상하기는 매우 힘듭니다.  어쩌면 우리나라 소프트웨어 산업의 정체에는 개발에 대해 무지한 관리자들의 책임도 있지 않을까요? 아직도 제게는 쉽지 않지만, 위 사항을 지키기로 노력하면서부터 개발과 연구를 병행하는 일이 많이 쉬워진 느낌입니다. 어렸을 때 찰흙놀이를 하면서 느꼈던 희열, 처음 짠 프로그램을 실행시켰을때의 흥분을 머리가 희끗해질때 까지 간직하고 싶습니다. 

이번에 iPad에 관한 기사 중 TIME지의 Stephen Fry가 iPad 디자인 및 개발 담당 Senior VP, 그리고 스티브 잡스를 모두 인터뷰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저도 맥북과 iPod Touch를 쓰고 있으며 주변사람(특히 개발자)들에게 애플 제품을 많이 권하는 편이지만, 이 기사에 실린 iPad의 개발철학을 듣고서는 애플이 진정 '컴퓨팅의 미래'를 보고있다고 느꼈습니다. 얼마전 구글의 경쟁력에 관한 글을 썼는데, 오늘은 애플의 경쟁력을 '철학'의 측면에서 분석합니다.


기능이 아닌 경험을 제공한다

우선 애플의 디자인담당 수석부사장인 Jonathan Ive는 iPad의 본질이 기능이 아닌 경험이며, 들어간 기능보다 빠진 기능들이 더 자랑스럽다고 말합니다. 보통은 더 많은 기능을 미덕으로 생각하는데, iMac, iPod, iPhone, iPad를 모두 디자인했다는 그의 말은 남다릅니다. 

제품의 가치가 개별 기능의 총합에 비례하지 않으며, '경험'의 품질을 떨어뜨리는 기능이라면 빼는 편이 낫다는 이야기입니다. 애플이 자사의 품질기준에 어긋나는 앱을 엄격한 심사로 가려내는 것이나, 아이폰 OS에 자칫 기기의 성능을 현저하게 떨어뜨릴 수 있는 멀티태스팅을 아직 허용하지 않는 것은 이런 철학에 기초한 의사결정입니다. 

"As for everything else, it's not about the features — it's about the experience. You just have to try it to see what I mean."

"In many ways, it's the things that are not there that we are most proud of," he tells me. 

"For us, it is all about refining and refining until it seems like there's nothing between the user and the content they are interacting with."

위의 밑줄친 표현이 명확하게 전달하듯, 기능이 아닌 경험이라는 말의 의미는 사용자가 수단(제품)을 의식조차 하지 않고 목표(컨텐츠)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몸의 일부인 것 처럼 그 존재 자체를 망각하게 하는 것은 가히 도구(tool)로서 도달할 수 있는 궁극의 경지가 아닐까요.


이성보다 감성에 호소한다

저자는 애플의 또다른 성공비결이 이성보다 감성에 호소하는데 있다고 말합니다. 감성은 이성적 판단이 시작되기도 전에 결론을 내놓기에 사람들이 애플 제품에 끌릴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회사와 달리 애플의 제품에 광적인 팬이 많다는 것은 이러한 논리를 뒷받침합니다. 

Apple's success has been founded on consumer products that address this side of us: their products make users smile as they reach forward to manipulate, touch, fondle, slide, tweak, pinch, prod and stroke

I had been prepared for a smooth feel, for a bright screen and the "immersive" experience everyone had promised. I was not prepared, though, for how instant the relationship I formed with the device would be

But for me, my iPad is like a gun lobbyist's rifle: the only way you will take it from me is to prise it from my cold, dead hands. 

위에서 저자는 iPad를 본 순간 '관계'가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설득하려고 들지 않고 감동을 주는 제품이라면 성공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감동을 받은 사용자는 어떤 이유를 들어서라도 자신이 그 제품을 좋아하는 이유를 정당화시킬테니까요. 그리고 주변 사람에게 그 감동을 전하려고 노력할테니까요. 

독립 제품이 아닌 플렛폼

예전 글에서도 지적했지만, iPod에서 출발하는 애플 모바일 기기의 기본적인 철학은 제품을 기반으로 하는 플렛폼을 개발하고 육성하는 것입니다. 일단 생태계가 형성되고 나면 돈을 들여 광고하거나 컨턴츠를 개발할 필요도 없으며, 고객 충성도 역시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iPad에 대한 유명 출판사 사장의 말을 들어봅시다. 

"it gives control back to us and allows us to discover how the market is developing. Frankly, when I saw the iPad, it was like an epiphany ... This has to be the future of publishing. You'll know if you've spent any time with one."

이처럼 출판사들은 저가 공급을 강요하는 아마존보다는 가격 결정권을 부여하는 애플에 더 호의적입니다. 컨텐츠 기기의 경쟁력이 사용가능한 컨텐츠의 양과 질에 좌우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iPad는 아마존의 아성인 전자책 시장을 상당부분 잠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마치며

흔히 하이테크 회사의 경쟁력은 기술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애플은 기술 측면에서도 세계를 선도하는 회사이지만, 애플의 경쟁력을 완성하는 것인 이러한 철학의 차이가 아닐까 합니다. 어차피 어떤 회사도 모든 기술을 스스로 개발할 수는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떤 기술을 가졌냐보다는 보유한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더 중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iPad 발표시에 스티브 잡스는 애플이 인문학(Liberal Arts)과 기술의 교차점에 서있는 회사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애플이 기술 만큼이나 그 기술을 사용하는 주체는 따뜻한 피가 흐르는 사람임을 이해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우리나라에도 이처럼 뚜렷한 철학을 가지고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이 나오기를 기원해봅니다. 

요즘 우리나라 인터넷에 대한 걱정들이 많습니다. 얼마전 저도 한국 인터넷을 술자리에 비유한 글을 썼는데, '한국 인터넷에서 잘못 끼워진 첫 번째 단추, 네이버'라는 제목의 글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글에 언급된 검색 성능에 대한 비교가 100% 공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검색 결과의 바탕이 되는 컨텐츠 자체가 다르기에), 적어도 네이버로 대표되는 포탈의 비즈니스 모델과 사회적 책임에 대한 문제제기는 탁월합니다. 

여기서는 이 글을 읽으며 떠오른 몇가지 의문을 정리하고 검색 연구자로서 나름의 대안을 제시해보고자 합니다. 이후에 언급한 '네이버'는 한국의 포탈을 대표하는 개념으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네이버는 evil인가?

예전에 iPad에 관한 글에서 플렛폼 전략을 언급했는데, 네이버는 사용자가 컨텐츠를 생산하고 배포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플렛폼 기업입니다.  여기까지는 탓할 일이 아닙니다. 네이버의 문제는 플렛폼 기업으로서의 역할에 있습니다.

우선 첫번째 문제는 인터넷이라는 개방된 플렛폼 안에 외부와의 소통이 차단된 닫힌 플렛폼을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네이버가 우리나라 인터넷 트레픽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관계로 우리나라 인터넷 전체가 외부에 대해 닫힌 결과를 낳았습니다. 네이버에서 외부 글을 검색하거나 외부에서 네이버의 컨텐츠를 찾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반면에 구글은 인터넷이라는 플렛폼의 사용성을 높이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네이버와 구별됩니다. 

두번째 문제는 플렛폼 기업으로서 도덕성을 지키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구글의 Don't be evil 모토나, 혹은 최근 타산지석이 되고 있는 애플의 앱스토어 심사 문제에서 알 수 있듯이 플렛폼이라는 생태계를 운영하는 주체는 모든 참여자에게 (심지어는 경쟁 기업에게까지도) 공정성을 유지해야 하며, 이를 어겼을 경우 엄청난 비난을 감수해야 합니다. 플렛폼 운영자로서의 지위와 수익은 참여자들이 만들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저는 포탈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전 글에서 언급했듯이 포탈은 한국 인터넷을 광장이 아닌 술자리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처럼 몇개의 닫힌 포탈이 대부분의 웹 트레픽을  과점하는 구도가 지속되고, 더욱이 포탈 내에서도 제대로 된 컨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인센티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인터넷 컨텐츠의 질적 저하는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인터넷이 갖는 지식 정보의 공유 플렛폼으로서의 기능을 감안하면 이는 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의 문제입니다. 

글 하나를 찾거나 등록하기 위해 몇개의 사이트를 뒤져야 하고, 막상 검색 결과조차 광고로 도배되어 있다면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초기화면에 선정적 기사로 가득하다면, 공들여 쓴 글이나 비디오가 갑자기 삭제되기라도 한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네이버의 전략은 지속 가능(sustainable)한가?

기업이 사회적 책임과 수익성은 별개의 문제이기에, 만약 사회적으로 최선이 아닐지라도 수익을 낼 수 있다면 개별 기업으로서는 합리적인 선택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네이버의 전략이 장기적인 생존을 보장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힘듭니다. 그 이유는 앞서 언급한 플렛폼 기업으로서의 특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양질의 컨텐츠를 공급할 수 있는 CP(e.g. 파워블로거)의 입장을 상상해봅시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컨텐츠에 대한 통제와 소유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포탈 블로그나 지식인에 종속되기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며, 따라서 포탈은 
현재 상태로는 좋은 컨텐츠를 확보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인터넷 시대에 검색되지 않는 정보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검색 광고의 남용과 기술적인 한계로 말미암아 존재하는 컨텐츠를 효과적으로 제공하는 것도 어려워 보입니다. 

한때 인터넷 그 자체였던 야후!의 사례를 들어봅시다. 야후!는 지금도 단일 웹사이트로는 인터넷상에서 가장 방대한 컨텐츠를 자랑하지만, 결국 구글에 검색 뿐만 아니라 인터넷의 관문으로서의 주도권을 내주었습니다. 스스로를 미디어 회사로 규정한 야후!는  막대한 양의 자체 컨텐츠와 편집 노하우를 경쟁력으로 내세웠지만, 전세계의 컨텐츠를 모두 모아 원클릭에 제공하는 구글 검색에는 당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당장 시장 판도가 바뀌지는 않겠지만 추세는 명확해 보입니다. 컨텐츠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모바일 웹의 대중화로  가벼운 검색엔진이 각광받게 되며, 특히 구글에서 막대한 투자를 지속하고 있는 기계번역 기술이 사용 가능한 수준으로 좋아진다면, 상황은 급속도로 달라질 수 있습니다. 검색엔진을 바꾸는데는 단 5초도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해봅시다.

네이버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만약 네이버의 현재 전략이 장기적인 생존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대안은 무엇일까요. 당장 모든 컨텐츠를 외부에 개방하고 초기화면을 구글처럼 바꿔야 할까요?  특히 이부분은 검색 기술의 비즈니스적 가치와 관련되기에 검색 연구자로서 흥미있는 주제입니다. 

얼마전에 언급했듯이 구글의 검색기술은 하루아침에 쌓인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10년째 끊임없는 혁신을 지속하고 있으며, 검색 및 기타 서비스를 위해 하드웨어와 운영체제에서 시작하는 풀스택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세계 최고의 엔지니어와 과학자들이 주도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마이크로소프트가 심혈을 기울여 내놓은 Bing Search조차 아직 구글의 아성에 아직 별다른 상처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회사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정면 승부를 피하면서 고유의 경쟁력을 확보해야 할 것입니다. 우선, 자사의 비교우위는 지켜가야 할 것입니다. 예컨데 네이버의 현재 경쟁력은 컨텐츠에 있는데 이를 구글 검색에 그대로 노출시키는 것은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는 것과 다름없을 것입니다. 우선 외부 컨텐츠에 대한 검색을 강화하면서 자체 컨텐츠를 서서히 공개하는 편이 나아 보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포탈이 자체 데이터 공개를 꺼리는 이유를 이해못할바는 아닙니다.

어쨌든 컨텐츠 개방은 피할 수 없을 것이며, 그 이후에도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검색 기술을 지속적으로 확보해야 합니다. 앞서 구글의 막강한 경쟁력을 언급했지만 검색 알고리즘(PageRank)과 대용량 서비스를 위한 기반 기술(Map-Reduce / BigTable)은 논문이나 오픈소스 등의 형태로 공개된 부분도 많습니다. 또한 네이버가 보유한 컨텐츠에 대해서는 자체 DB의 Metadata나 사용자 Log를 검색을 위한 Feature나 랭킹 학습을 위한 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기에 여전히 외부 검색엔진에 대해서는 훨씬 유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직 기대만큼의 성공은 아니겠지만, 구글과 경쟁하기 위한 마이크로소프트 Bing Search의 전략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우선 Search Engine대신에 Decision Engine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구글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여행이나 쇼핑 부분을 집중 흥보했습니다. 검색 품질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한편 구글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인터페이스 측면에서도 여러가지 혁신을 이루었습니다. 이런 전략에 컨텐츠 오너로서의 장점과 한국 유저에 대한 이해를 결합한다면 승산이 있지 않을까요.

마치며

삼성전자와 iPad에 관한 글에서 언급했지만, 모든 것이 모든 것과 연결되는 시대에 문호를 닫고 공정한 룰을 따르지 않는 것은 근시안적인 전략입니다. 대한민국 인터넷 사용자로서 포탈의 변화를 기대해봅니다.